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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기는 홈리스 광장이다"

‘점거’하고 ‘점령’하며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곳, 서울역 광장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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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사진=홈리스행동>

 

“아니, 지가 뭔데 나더러 서울역엘 나가지 마라 어쩌라 그러는 거야, 대체?” 

 

B가 영주(가명)에게 알려준 바로는, A가 B에게 ‘서울역에서 영주를 보면 서울역에 나오지 말라고 하라.’고 말했다는 거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지 보름이 넘었지만, 영주의 심정은 아직 부글거린다. A도 B도 그런 말을 하거나 그렇게 전할 사람이 아닌데, 영주가 한번 열을 내며 우기기 시작하면 당장 다른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코로나에 걸려 죽든 술 먹다 쓰러져 죽든 싸움질하고 깜빵에 가든, 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대체? 그 말을 들으니까 확 뒤집어지드라고. 내가 열여섯에 집 나오자마자 고속버스 타고 바로 찾아온 데가 서울역이야! 오십 년이 다 되도록 살면서 젤 오래 살아온 곳도 서울역이야! 제2의 고향이야, 여기가. 아니, 나 태어나고 자란 고향보다 여기가 더 고향이야, 나한텐.” 

 

다른 이야기들은 본인 말마따나 “못된 성질머리” 때문에 쏟아내는 말이라 치고, “서울역은 나한텐 고향보다 더 고향”이라는 말만은 그의 진실이다. 청주여자교도소 빵살이 중에도, 장기입원 중이던 경상도 어느 병원 흡연실에서도, 울산 엄마네 옆에 잠깐 살 때도, 뒤늦게 엄마를 묻은 자리를 찾아가다 허탕치고 내린 지방 도시 기차역에서도, “늘 서울역이 그리웠다.” 

 

90년대 초 노숙 초짜 시절의 영주를 향해 “어린 것이 어쩌다“ 하며 있는 돈 다 털어 김밥과 음료수와 담배를 사 준 구 역사 속 전라도 언니. 97년 IMF 때 쏟아져 나온 실직자 삼촌들한테 돈을 모아 쌀이랑 국수랑 김치를 사다 가출한 십 대 애들을 챙겨 먹였다는 옛 서소문공원. 2011년 ”서울역사 홈리스 강제 퇴거 조치“ 때 홈리스행동 등 홈리스 인권단체 사람들과 둘러앉아 “부역장은 당장 나와라!”라고 악을 썼다는 신 역사 점거 농성. 성폭력 피해를 입거나, 명의도용을 당하거나, 한 끼 밥과 적은 돈에 남자를 따라나서면서도 삶을 이어온 곳. 최근 3년간은 서울역 근처 고시원과 여인숙에 주소지를 두고 살지만, 그는 여전히 광장 사람이다. 

 

“신 역사”라 불리는 현재 서울역의 주소는 서울 중구 한강대로 405이다. 컨테이너에 설치된 서울역 코로나 19 임시선별진료소의 주소도 한강대로 405이다. 그러니 신 역사와 선별진료소와 구 역사를 아우르는 서울역 광장의 주소 역시 그냥 “한강대로 405”라고 해버리면 된다. 구태여 주소를 따지는 것은, 광장에서 거리 노숙하는 홈리스는 주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복지와 행정에 관한 시민의 권리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곳 사람들은 서울역 광장 근처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돈 생긴 사람이 밥과 술과 담배를 쏘고, 함께 놀고 싸우고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서울역 측과 구청과 서울시와 정부는 민원을 핑계로 홈리스의 살림살이와 잠자리르 청소해대며 쫓아내려고 하지만, 이곳 서울역 광장은 금세 또 모여 다시 삶을 이어가는 홈리스들의 주소지이자 광장이다. 

서른한 살 이주현. 2020년 7월 6일 광장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서 갔고 의식을 찾지 못한 채 7월 7일에 사망했다. 병원 냉동고에 시신이 있던 9일,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서울역 사람들’끼리 주현의 사진을 들고 광장을 넓게 돌았다. 주현과 가깝게 지낸 ‘서울역 형’ 하나와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서울역 사람’ 화장해 주러 가는 거라 따라나선 ‘서울역 아저씨’ 하나까지, 혈족 아닌 다섯 사람이 7월 16일 승화원 공영장례에 함께 했다. 영정 대신 얼굴 사진이 담긴 휴대폰이 놓인 소박한 제사상이었다. 

 

광장에서 사는 동안 “막내”라고 불렸다던 주현은 맘이 여리고 눈물이 많았으며, 시비 거는 사람한테는 대들고 때리다가도 혼자 따로 떨어져 울곤 했단다. 죽을 작정한 사람처럼 아무리 말려도 술을 퍼마시더니 마침내 죽음에 도달했단다. 호적이 알려주는 서른한 살 생애 내력은 8살에 부모를 17살에 할머니를 잃고, 해병대를 나와 인천을 거쳐, 서울역 광장에서 5년여를 살았다는 것이 전부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매년 12월 22일 동짓날 앞뒤로 거리와 쪽방에서 살다 죽어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기리는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돈과 가족 중심의 세상에서 공리(公利, 사회의 이익)를 위해 그들을 삭제하려는 힘에 맞서, 홈리스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저항의 추모제다. 

 

광장 안 사람들은 바깥사람들과는 다른 욕망을 품고, 다른 질서와 다른 관계를 만들며 살아간다. 자신들끼리 많이 모인 곳이니 남들의 시선에서도 한결 자유롭다. 누구는 이 광장을 ‘소굴’이나 ‘서식지’라 부르지만, 뒤집으면 ‘점거’와 ‘점령’이기도 하다. 돈 세상에서 밀리고 밀리려 가족과 집에서도 떨어져 나간 이상하고 불온하며 일탈적이고 탈정상적인 잉여들, 앞으로도 더 모이고 확산될 잉여들의 “비규범성”이야 말로 홈리스가 모이는 광장의 특성이자 힘이다. 미래 따위에 삶을 저당 잡히지 않은 사람들끼리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배우고 알려주며 “함께 모여 사는 곳”이다, 서울역 홈리스 광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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