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79
2022.02.26 (20:40:04)

[기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 연고 있는 우리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아랫마을홈리스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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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홈리스행동과 함께하는 평등한 설 명절나기’ 행사에 참석한 홈리스행동 활동가(左)와 당사자 회원(右)의 모습

 

설이니 추석이니 새해 첫날이니 하는 각별한 날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과 가족 덕에 즐거울 수 있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박탈감과 우울감을 갖게 하는 세상이지요. 그럴수록 가족 없이 거리와 쪽방에서 명절을 쇠는 사람들끼리 모여, 신나는 “우리들의 명절”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돈과 가족이 최고라는 세상의 끝에서 가난과 코로나 재난을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우리도 가끔 함께 모여 한바탕 놀아줘야 하잖아요! 

 

“홈리스행동”은 늘 그렇듯 이번 설 연휴도 20여 명의 홈리스들과 활동가들이 아랫마을에 모여, 주변 홈리스들과 지인들에게 나눌 따듯하고 소박한 명절음식 꾸러미를 만들었어요. 평소엔 서울역과 용산역 광장이나 거리에서 만나던 홈리스들도 여럿 오셨고, 쪽방과 임대주택에 사는 홈리스들도 오셨댔어요. 여기저기서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 솜씨와 수다와 노래와 잔소리로 복작복작 하루를 즐겼답니다. 

 

동그랑땡, 다진 고기가 들어간 깻잎전, 손이 느린 활동가가 부친 동태전, 만들다가 다 먹어버린 배추전, 비싼 사과와 배 대신 들어간 귤과 방울토마토, 전북 남원에서 선물로 들어온 곶감, 그밖에도 꼬지 전, 잡채, 소불고기, 쌀 떡국, 캔 식혜를 나누려고 준비한 우리의 잔치였어요. 아시다시피 음식은 여럿이 만들고 널리 나눠먹어야 더 맛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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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랫마을에 자주 놀러오는 쫄보 고양이 '지붕이'

 

길고양이들도 덩달아 종일 아랫마을을 들락날락했답니다. 여기에는 돈을 챙겨 온 사람도, 혈연도 아무도 없었어요. 아, 고양이들의 관계는 잘 모르지만 말이에요. 한국에서 명절은 지붕 있는 가족끼리 모여 음식과 돈을 나누는 날이지만, 우리에게 명절은 마음 맞는, 근처에 사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이들과 나눌 음식을 만드는 날이랍니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면 충분하지요. 그게 우리의 ‘연고’ 아닐까요?

 

다음 명절엔 더 많은 홈리스가 아랫마을에 모여 손도 마음도 보태며 즐겁게 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평소 안 오다가 명절날 오려면 쑥스럽잖아요. 미리 찾아오셔서 눈도장도 찍고 그 김에 이런저런 상담도 받으셔요. 참, 아랫마을 야학도 있답니다. 아랫마을은 모든 노숙인과 홈리스들에게 항상 열려있어요. 늦은 인사지만, 새해에도 복 많이 만들어 여기저기 나누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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