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행동에서 발표한 성명과 논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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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전문 보기 : http://bit.ly/3IaLHnt

 

“1년 만에 한다는 말이 고작 유효기한 1년 연장?”

보건복지부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를 당장 폐지하고,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에 속히 착수하라

지난 9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 등에 관한 고시」(이하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하였다. 오는 3월 21일이면 만료될 고시의 유효기한을 1년 더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고시의 실효성에 대한 평가나 연장에 대한 근거도 없이, 홈리스 의료지원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복지부가 사실상 묵살한 것이다.

 

지난 1년간, 홈리스 당사자들과 사회운동단체들은 ‘노숙인 등’의 의료접근성 제고를 위해서는 고시의 제정이 아닌,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의 폐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감염병의 유행상황에서 ‘노숙인 등’의 의료이용을 가로막은 것은 감염병 그 자체가 아니라, 지난 11년간 이들에게 소수의 지정된 의료기관만을 이용하도록 제한해온 복지부의 ‘차별행정’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와 같이 ‘노숙인 등’을 차별해도 된다는 중앙정부의 메시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의료지원사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사업 내용에 따르면, 지자체가 의료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노숙인 등’에게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을 별도로 제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지자체 또한 이들에 대한 진료를 노숙인진료시설에만 의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노숙인 등’에게 ‘찍어버린’ 제도적 차별의 낙인은 고시 따위의 임시방편으로는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복지부는 고시 제정 이후 노숙인진료시설이 기존 291개에서 74,614개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노숙인진료시설이 아닌 의료기관에 ‘노숙인 등’ 환자가 진료받기 위해서는 노숙인지원기관이 별도로 이들 의료기관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는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다. 즉, 복지부의 설명과 달리, 고시를 통해 자동적으로 모든 1·2차 의료기관에서 ‘노숙인 등’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고시의 무용함을 드러내는 것이자, 제도화된 차별이 얼마나 공고한 것인지 그 해악을 드러내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또다시 1년간 고시를 연장하겠다는 복지부의 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너무나 안일한 행정이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노숙인 등’의 의료접근성 문제의 핵심은 감염병이 아니라 이들의 의료이용을 제한하는 제도적 차별이며, 해결방법은 바로 이 차별을 지금 당장 끝장내는 것이다. ‘노숙인 등’은 다른 의료급여 수급자와 달리 지정된 병원만을 이용해야 하고, 복지부 스스로 근거 하나 내놓지 못하는 급여 선정기준에 삶을 저울질 당해야 한다. 당사자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급여 신청방법과 유지조건으로 신청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노숙인 등’ 의료지원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 노숙인1종 의료급여의 문제는 급여 대상인 전국 9천여 명의 ‘노숙인 등’ 중 수급자가 고작 2백여 명에 그치며 그마저도 줄어드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복지부는 고시의 연장이 이런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는가?

 

복지부가 할 일은, ‘노숙인 등’이 아플 때 참도록 만들고, 참아서 병을 키우도록 만드는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다. 11년간의 낙인효과를 체화하고 있는 의료기관과 지자체를 바로잡는 데에 앞장서는 것이다.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의 첫 번째 관문이다. 복잡한 선정기준과 불필요한 고시는 잘도 만들어내면서, 시행규칙 한 줄 바꾸는 일을 11년째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지부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를 지금 당장 폐지하고, 홈리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에 속히 착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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