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행동에서 발표한 성명과 논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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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성명]

안전과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서 사망한 故 임o희 님을 추모하며,

여성 홈리스 지원체계 마련을 촉구한다 

지난 3월 16일 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하던 여성 홈리스가 성폭력 범죄로 사망했다. 가해자는 서울역 인근 골목에서 저녁 8시께부터 3시간 가까이 고인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는 안전 사각지대에 처한 ‘거리 홈리스’이자, 성별 특성에 의해 더욱 취약한 ‘여성 홈리스’를 표적으로 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17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제기했기에 형이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고인의 죽음 이후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 선고가 곧 사건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사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여성 홈리스 복지지원 체계 마련을 촉구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추모한다.

홈리스행동은 거리 홈리스 현장지원 활동(‘홈리스 인권지킴이’)를 통해 약 5년 전부터 고인을 만나왔다. 고인의 사망 직후 소식을 접했지만, 단체와 고인의 홈리스 동료들은 범죄로 숨졌다는 사실 말고는 범인의 정체도, 범행의 이유도, 죽음의 과정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겨레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하며 지원했고 두 차례 보도된 바 있다(한겨레 커버스토리 ‘말해지지 않은 죽음에 대한 부고 1.https://bitly.ws/UATu 2.https://bitly.ws/UATU). 이 과정에서 20년 만에 연락이 닿은 형제자매들은 직계 유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다.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서야 가해자와 재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고 3차 공판을 참석할 수 있었다. 검사는 징역 25년을 구형했으나 17년 형으로 감형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피해자 동의 없는 형사공탁이 가능(공탁법 제5조의2 ‘형사공탁의 특례’)해졌다. 유족들이 공탁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공탁이 감형 사유로 인정됐다.

 여성 홈리스 지원체계 부재,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홈리스

이 사건은 여성 홈리스에 대한 지원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고인의 상태를 이용한 범죄다. 고인은 작년 말 서울시 ‘노숙인 임시주거지원 사업’을 통해 서울역 인근의 고시원에 거주하던 중 범죄 피해를 당했다. 거리 홈리스가 서울시 지원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주거는 고시원·쪽방과 같은 비적정 거처가 전부다. 이런 거처는 층별 성별 분리는커녕 화장실, 샤워장 등 필수생활 설비조차 공용으로 두고 있어 여성을 묵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고인이 생활하던 고시원 역시 마찬가지로 고인이 해당 거처를 나온 데에는 이와 같은 주거환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인의 홈리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는 “유독 여성 홈리스들에게 친절한 60대 남자”, “피해자를 찾아다니던 남자”였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은 안정적인 거처가 부재한 고인의 취약한 상태를 잘 알고 이용한 범죄로 볼 수 있다.

여성 홈리스의 경우 구타·가혹행위, 성범죄와 같은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신속하게 복지 서비스로 연계하여 이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홈리스 지원체계는 원칙부터 실행 전반에 있어 성별 특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상태다. 2011년 제정된 「노숙인복지법」은 여성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고 이후 “성별 특성을 고려하여 노숙인 등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2019.01.15.)되었으나 구체적인 정책 설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 거리 홈리스에게 가장 먼저, 응급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여성 전용 일시보호시설은 전국에 단 한 곳, 서울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곳 역시 고인의 사망 장소이자 거리 홈리스 밀집 지역인 서울역에서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어 현장 보호 기능에 취약하다. 

성별 특성을 반영한 홈리스 지원체계 마련해야

여성 홈리스에게 사실상 거리 혹은 시설 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최근 여성노숙인재활시설에 거주하던 지적장애 여성이 행인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시설 내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시설을 나와야 했던 여성은 “교도소라도 가고 싶다”며 범죄를 저질렀다. 해당 시설 연간 예산은 1,800만원 정도의 영세하고 집단 감염을 감당할 수 없는 취약한 곳으로 홈리스 상태에 놓인 이에게 적절한 주거라 볼 수 없다. 특정 시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설은 집이 될 수 없다는 것과 주거취약계층에게 시설이 아닌 주거지를 우선 제공하는 ‘주거우선(Housing first)’ 전략 채택은 주거권 단체의 오래된 요구이기도 하다.

정책의 한계 속 매일의 생존이 위기인 여성 홈리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 됐다. 서울역에는 밥과 잠자리를 미끼로 여성 홈리스를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7년 대전역에서 생활하던 여성 홈리스를 안면이 있던 남성이 술을 마시자며 집에 데려가 살해한 뒤 가방에 담아 공터에 버린 사건도 있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여성 거리노숙인 현장 보호 체계를 강화한다며 전담 조직을 선정·지원한 바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여성홈리스 복지지원 체계 마련 없이 여성 홈리스를 보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인의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보호라는 이름 아래 단속이 아닌 여성 홈리스에게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복지 제도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노숙인 지원사업 전반에 걸쳐 성별 특성을 반영한 홈리스 복지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고인은 내성적 성격으로 본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으나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주변을 잘 챙기고 고인과 가까이 지내시던 이들 기억에 “돈 한 푼 말 한마디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더는 이러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홈리스행동은 여성 홈리스가 안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할 것이며, 이러한 요구가 제도로 정착되길 촉구한다.

故 임o희 님이 가난과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바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성명 전문 보기

https://bitly.ws/UF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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