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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될 위기에 처한 영국의 ‘홈리스 사망자 통계

 

<이진형 / 홈리스행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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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의 홈리스 사망자 규모 추이 <자료=영국 통계청>

 

영국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홈리스 사망자 통계’를 작성하여 공표하고 있습니다. 영국 내 홈리스 사망자(2013년 이후 사망자)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작성된 이 통계는 아직까진 실험 통계*의 지위에 머물고 있지만 성별, 연령, 사망 장소, 사망 원인 등 핵심 정보를 두루 포괄하고 있어 홈리스의 조기 사망을 예방하고 관련 정책을 점검ㆍ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 통계청(ONS)이 “보다 효율적이고 개선된 보건 및 사회복지 통계환경 조성” 계획의 일환으로 홈리스 사망자 통계의 공표를 돌연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불완전한 실험 통계인 홈리스 사망자 통계를 “국가 통계의 지위로 격상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개발 작업이 필요”하나 현재로선 여러 기술적 문제(홈리스 상태의 정의, 전체 홈리스 규모 통계와의 정합 여부 등)를 해소하기 어려워 통계 공표의 유용성이 낮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통계의 ‘품질 관리’가 어렵다는 얘기지요. 다만 관련 데이터를 일체 수집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닌데, 가디언지를 비롯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통계청은 홈리스 사망자에 관한 데이터는 계속 수집하되 이를 별도의 통계로 작성ㆍ공표하지 않고 전체 인구집단의 사망률 수치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는 말장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결국 개별 통계로서의 ‘홈리스 사망자 통계’는 폐기하겠다는 뜻이니까요.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자 영국 내 홈리스 관련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자선단체 ‘크라이시스(Crisis)’는 “불필요한 고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될 것”이라면서 영국 정부(통계청)의 방침에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 단체 소속 연구자 벤 샌더스(Ben Sanders) 박사는 홈리스 사망자 통계가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당장 통계를 폐기하는 건 “홈리스의 비가시성을 높이고 배제를 고착화할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홈리스가 마주하고 있는 건강불평등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관련 통계를 계속해서 추적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미 보건 부문의 홈리스 관련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홈리스 사망자 통계마저 폐기된다면 (건강불평등)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청소년 홈리스 지원단체 ‘센터포인트(Centerpoint)’도 홈리스 사망자 통계의 상징성을 강조하며 “오히려 정부는 통계 공표를 장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외에도 홈리스 지원기관의 연합체인 ‘홈리스 링크(Homeless Link)’, 홈리스의 조기 사망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홈리스 기록관(Muesum of Homelessness)’ 등 여러 단체들이 정부와 통계청을 향해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사실 홈리스 단체들이 이렇듯 날선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공표된 홈리스 사망자 통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 데이터 집계가 시작된 2013년부터 최신 집계인 2021년까지 영국(잉글랜드, 웨일즈)의 홈리스 사망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8년 동안 ‘확인된’ 홈리스 사망자는 392명에서 480명으로 약 22% 증가했고, ‘잠정적인(추정치)’ 홈리스 사망자는 482명에서 741명으로 약 54%가 증가했습니다. 단지 규모만이 문제인 것도 아닙니다. 2021년 홈리스 사망자의 사망 당시 연령은 평균 45.4세로, 전체 인구집단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주된 사망원인은 약물중독(35%)과 자살(13.4%)이었는데, 이 또한 전체 인구집단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처럼 홈리스 사망자 통계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많은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지 집계누락(과소집계)의 위험이 높고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까다로운 불완전한 실험 통계라는 이유로 폐기된다면, 사태의 심각성과 공적 개입의 시급성 역시 휘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지의 홈리스 단체들이 정부의 통계 폐기 방침에 거세게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홈리스 사망자 통계가 일종의 ‘풀뿌리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2018년 이전까지 영국 정부는 홈리스 사망자에 관한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ㆍ보관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메이브 맥클레너건(Maeve Mcclenaghan)이라는 언론인이 홈리스 단체 활동가들과 1년여에 걸쳐 800명의 홈리스 사망자를 추적 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이들의 조사결과는 홈리스 사망 실태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정부에 공식적인 통계 작성을 요구하는 집합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즉, 현재의 홈리스 사망자 통계는 이 같은 대중적 요구와 의사가 반영되어 탄생한 것이기에 정부 부처에서 이를 임의로 처분하는 건 권한을 남용하는 처사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홈리스 사망자 통계가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불완전 통계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개선과 보완이 필요성을 ‘통계 폐기’의 근거로 삼는 영국 정부의 괴상한 논리를 납득하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이런 궤변까지 동원해가며 ‘홈리스 사망자 통계’를 폐기하려는 걸까요? 참으로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실험 통계(Experimental Statistics) : 새로운 유형의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여 실험적으로 작성하는 통계로, 작성 이후 신뢰성(일관성) 및 타당성(정확성)의 확인ㆍ점검이 필요한 통계이다. 영국의 경우 실험 통계를 국가 통계(National Statistics)와 별도로 분류하여 관리ㆍ운용하고 있다. <출처=대한민국 통계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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