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쪽방, 장애인이 살 수 없지만, 많은 장애인이 살고 있는 곳

가가호호 좌담회 “장애와 취약거처가 만났을 때”

 

<림보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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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에서 열린 가가호호 좌담회 <사진=홈리스행동>

 


[편집자 주] 2022년부터 재개발이 예정된 창신1정비구역 내 위치한 쪽방 주민들을 만나며 상담과 만남, 교육활동을 진행해 온 홈리스주거팀이 작년 12월 6일. <가가호호좌담회 : 장애와 취약거처가 만났을 때>를 열었다. 쪽방 주민의 재정착이나 이주대책을 보장하지 않는 민간재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제공하면서 진행한 ‘2022년 창신1정비구역 쪽방 주민 실태조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취약주거의 현장에서 만난 장애당사자의 이야기와 그들을 지원한 활동가들의 경험을 나누는 이 좌담회에는 기자와 홈리스 당사자 및 활동가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홈리스뉴스 편집부는 좌담회에서 발표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민푸름 활동가,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의 주장욱 활동가,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여 지면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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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푸름 활동가는 창신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사례를 지체장애인 창씨와 정신장애인 신씨의 이야기로 재구성해 들려주었다. 
 
어려서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창씨는 40대까지는 창신동 주변 공장에서 일하며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장애가 팔까지 올라와 더 이상 공장에서 일하기 힘들어졌지만, 간혹 있는 배달 일거리 때문에 아직 창신동을 떠나지 못한다. 민푸름 활동가는 창씨와 같은 지체장애인의 경우, ‘지금 당장 더 나은 방’을 찾는 것에 몰두하며 이 방, 저 방을 전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창신동 쪽방 주민의 경우, 종로구에 매입임대주택이 전혀 없고, 전세임대주택 중에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집을 구할 여지도 희박할뿐더러, 타 자치구의 영구임대주택을 몇 년이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주대책 없이 퇴거가 이루어진다면, 대부분 주거이전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해 보이는 ‘창씨들’의 주거빈곤 현실은 현재 거처에서 퇴거당하면 계획이 없거나(40.8%), 같은 구 쪽방이나 비적정 주거로 이주 예정(32.4%)이라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창씨들’이 경험하는 주거빈곤은 돌봄빈곤을 동반하게 된다.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가 너무 적은 데다, 그마저도 이용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걷는 것’(41.8%), ‘화장실 이용’(19.4%), ‘목욕’(17.4%)이 어렵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는 쪽방 건물의 열악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장애나 건강 상태가 그만큼 지원이 필요한 정도의 상태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민푸름활동가는 설명했다. 이러한 돌봄지원은 활동지원 혹은 장기 요양보험 제도로 보완할 수 있지만, 쪽방 거주 장애 당사자들은 ① 방이 좁아 돌봄제공 노동자와 함께 있기 어렵고, ② 고령의 당사자인 경우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 시기를 놓쳐서, ③ 돌봄제공 노동자가 열악한 쪽방환경을 꺼려 매칭이 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곤 한다. 
 
조현장애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신씨는 목소리나 망상을 좇아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라 방을 비우는 일도 잦았다. 특히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다 싸우게 되는 날엔, 주위 이웃들의 민원에 시달리고 한 방에서 오래 머물기 어려워지거나 거듭 퇴거 요청을 받기도 했다. 앞서 창씨의 경우 제도적 서비스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사적 돌봄을 오히려 더 활용하지만, 신씨의 경우는 정신장애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사적 돌봄망에서마저 배제되기 쉽다.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경우 제도적 돌봄을 활용하기 어려운 공백이 크므로 이들의 돌봄 빈곤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창씨와 신씨의 주거빈곤, 돌봄빈곤이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두 빈곤이 이들의 시설 입소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은 ‘종로구 관내 쪽방 등록/미등록 장애주민 돌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통합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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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의 주장욱 활동가는 세 명의 장애 거리홈리스 사례를 통해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노숙인복지법 시헹령> 제2조 제3호에 따라 2016년부터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있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에는 장애홈리스 보호 계획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홈리스 상태, 장애 등 취약성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이들에게는 세부적인 정책적 고려가 필요함에도, 2021년 발표된 <제2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 종합계획>에는 ‘정신장애 노숙인의 지역사회 재정착을 위한 초기적응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가 있는 시설 입소자의 경우 해당 장애 유형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시설로 연계한다.’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장애 여부나 장애 특성에 따른 정책적 고려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계획이 이렇게 부실한 이유는 전국 거리홈리스의 장애 실태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통해 생활시설 입소자와 쪽방주민의 장애실태는 보고하고 있지만, 노숙인일시보호시설,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이용자를 포함한 거리홈리스의 장애 실태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22년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거리홈리스의 장애실태를 조사보고한 바 있다. ‘거리노숙인’ 90명 중 장애가 있는 이들은 14명으로 전체의 약 16%에 해당한다. ‘거리노숙 기간’을 묻는 질문에 ‘거리노숙인’과 노숙인시설 입소자 중 장애가 없는 이들은 ‘1~6년’(35.4%), 장애가 있는 이들은 ‘16년 이상’(48.7%)이 가장 많았다. 조사결과를 통해 홈리스 상태와 장애라는 취약성이 중첩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거리 노숙을 더 오래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최대 월 33만원에 그치는 임시주거비로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 거리홈리스가 생활할 수 있는 거처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쪽방, 고시원 등의 민간자원을 동원하는 임시주거지원 사업을 지속하는 한, 휠체어, 보행기 등 보장구를 이용해야만 하는 장애 홈리스는 거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장애 거리홈리스의 특성에 맞는 지원체계 수립이 필요하다. 긴급활동지원 서비스는 등록 장애인에 한해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 노숙 상황 때문에 장애 등록을 하지 못하거나, 노숙으로 인해 장애를 얻게 된 거리 홈리스는 제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장애‧거리홈리스를 주거지원 할 때,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긴급히 신청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신청 및 심사절차를 간소화해야한다.
 
주장욱 활동가는 발제를 마치며 거리 홈리스 지원체계의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활, 즉 노동시장으로의 복귀라는 기조만을 고집하는 한, 거리 홈리스를 생산성 없는 존재로 여기는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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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주민 당사자인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는 당뇨가 심해지면서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 그는 쪽방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주로 이야기했다. 쪽방은 반지하, 고시원, 옥탑방보다 못한 최악의 주거로 불리는데, 장애인의 경우는 그나마 생활하기 나은 곳을 찾아야 하다 보니, 불편함이 더 크다고 했다. 
 
윤 대표는 4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전동휠체어 충전과 화장실 이용이 그나마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사하면서 화장실과 복도 높이를 맞추고 화장실 벽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필요한 수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을 몇 개를 올라야 하고 휠체어를 충전시키려면 안팎을 오가며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만한 집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동자동 건물은 대부분 계단이 높아 이동하다 작은 실수를 해도 크게 다치거나 죽기도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자동 쪽방촌을 방문했다가 주민이 써준 ‘마음을 모아 약자와의 동행’이라고 쓴 글귀를 매일 보며 마음을 다진다던 경향신문 기사를 봤는지 모르겠다. 그 글씨를 써준 이가 윤 대표다. 그날은 '온기창고'의 개소식이었고, 오 시장은 온기창고에서 물건을 한 보따리 구매해 윤 대표의 방으로 찾아왔다. 카메라도 여러 대 같이 집에 들어섰다. 형식적인 안부를 묻던 오 시장이 글씨를 써달라고 했다. 윤 대표가 처음에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을 썼는데, 오 시장은 “마음을 모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글귀를 다시 부탁했다. 거절할 수 없어 오 시장이 원하는 글을 써준 윤 대표는 이후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이용당한 것 같아 허탈했지만,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마음만은 진심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윤 대표는 오 시장이 정말 '약자와의 동행'을 하고 있다면 온기창고가 지금의 모습일 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온기창고는 경사로가 없고 턱이 있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으므로 윤 대표와 같은 장애 쪽방 주민은 온기 창고를 이용할 수 없다. 휠체어를 타고서도 직접 들어가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를 만들었어야 했다며, 장애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람에 대한 존중도 없이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가호호 좌담회가 끝난 이후, 동자동 온기창고에 경사로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자동 쪽방촌은 현재 토지‧건물주들의 반발로 공공개발이 3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윤 대표는 수십 년 동안 토지‧건물주들이 쪽방 주민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며 무시해 온데다, 재개발로 쪽방이 사라질 때마다 쪽방 주민들에게 아무 보상도 하지 않고 내몰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윤 대표는 공공개발이 하루 빨리 진행된다면, 집같은 집에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윤 대표는 정부가 짓겠다는 현관, 화장실, 주방이 모두 포함된 5.44평의 임대주택이 또 다른 쪽방이 되지 않을지 우려했다. 그는 단지 쪽방보다 나은 집이 아닌,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한여름 폭염에도 방보다 밖이 더 낫다며 자발적으로 노숙을 하고, 강추위가 닥치면 수도가 얼어 씻지도 못한 채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고 살아간다. 형편이 비슷한 이웃과 의지하며 동자동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주민들이 공공개발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집다운 집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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