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순조로운 듯 순조롭지 못했던 복지관 방문기


<하루 / 노숙인인권동동실천단 자원활동가>


명의도용 피해자를 만나다

▲  남대문지하도에서 활동 중인 실천단 활동가들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하 실천단)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거리 당사자분들은 내가 개신교 계통의 신학생이라는 것을 아는 듯, 실천단을 교회 봉사단체로 오해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2002년 월드컵대책위원회로 시작한 단체인데요.”로 시작하는 말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 목요일 밤에 종각역 인근에 일회용 차와 커피, 그리고 보온병을 달랑 들고 거리 홈리스에게 실천단을 소개했다. 우리에게는 조끼나 완장 같은 외적인 특색으로 설명할 방법은 애초에 없고, 할 수 있는 건 오직 단체의 활동 내용과 지향을 저렴한 종이컵 차 한 잔으로 건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어떤 반응이 오지는 않아서 그마저도 지칠 무렵이었다. 그러던 지난 5월에 H님을 만났다. 그분은 실천단 활동 중이던 나에게 피해를 호소했다. 호소한 내용은 생사를 오가는 문제였고 그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는 명의도용 피해였다. 무엇보다 H님의 건강을 위한 병원치료가 시급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어려웠다. 무엇이든 주거가 있고 전입신고를 해야 안정적으로 치료와 법률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복지관과 의료원에 동행하다

사회복지관(희망온돌 신청)과 국립의료원(입원치료)에 방문 동행했을 때, 나는 호흡이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H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내가 동석하여 복지사와 의사를 만날 예정인데, 나는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어떻게 잘 덧붙일지를 함께 그렸다. 오가는 대중교통 안에 앉아서 짧게 회의한 결과, 나는 말수 없고 차분한 ‘인권단체’ 활동가 역할을 맡았다.


의료원 입원은 잘 마쳤지만 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순조롭지 못했다. ‘순조로운 듯 순조롭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사회복지사와 의사의 설명과 질문들을 가만히 듣고 H님이 이야기할 차례가 되면 지긋이 옆을 보다가, 마지막에 입원과 생계비 지원이 허가되어야 하는 이유만 곱절로 강조하고 나왔다. 복지사와 의사가 염려하면서 던지는 질문이 과하다 싶으면 그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환기시키기 위해서 다시 처음 계기와 필요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들은 H님에게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H님과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굳이 가족 안에서의 호칭을 끄집어내야만 했을까? 아버님이라는 말은 너무나 어색한 호칭이었다. 대화를 듣는 내내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을 수 있는 호칭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여하간 복지사들은 H님의 인생사 전반을 물은 다음, 상위 회의에서 결정이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복지관에 다녀온 뒤 지원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큰 불안감을 호소한 H님에게 끝내 지원은 나오지 않았다.


당사자와의 동행이 남긴 물음

▲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에서 활동중인 기고자 하루




실천단 자원활동가로 활동을 하며 H님을 만났고, 이후 H님의 명의도용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서 홈리스행동에 연계했다. 나는 낮 시간에 다른 일정이 있기 때문에, H님의 병원 동행과 각종 행정지원을 홈리스행동에서 맡는 일이 잦아졌다. 반성하자면, 그런 과정 중에 H님의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잘 고민하지 못했다. 지금 이 글을 내가 쓰고 있는 이유는, 처음 했던 행정 동행과 병원 동행을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되돌아보고 생각하기 위해서다.


복지관에 희망온돌 생계비지원 신청을 다녀온 이후 몇 주 동안 H님은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힘듦에 나는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앞에 이야기한 사건 말고도 동행 지원에서 알아야 할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선들을 잘 모르고 여러 차례 넘나들곤 했다. 그동안 아웃리치 활동 중에 잠깐씩 만나던 거리 당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고민이 있었지만, 직접 동행지원을 하게 되니 당사자와 활동가가 소통하는 공간이 매우 명확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당사자와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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