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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22:28:22)

<기고>


여성 홈리스와 마주하기


<이은기 / 아랫마을홈리스야학 교사>


홈리스행동 사무실에서 ‘개대장’이라 불리는 야학 학생 분과 나란히 앉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는데 개대장님이 책표지에 적힌 글을 보고 한마디 하신다. (표지에는 “내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면 뭐가 중요하지/ 사랑”이라고 적혀 있다.)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도 짐짓 진지해져 물어본다.


“그러면 뭐가 중요한데요?”

“목숨.”


순간 말문이 막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왜요?”하고 묻는다. 그 후로 개대장님의 부당했던 불심검문 일화를 듣지만, 안전지대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저 잠깐 생각할 뿐이다.


홈리스와 마주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홈리스는 단일한 모습이기 쉽다. 집이 없어 불쌍한 사람들 아니면 게으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만 말이다. 그렇기에 홈리스 내부에도 성별, 나이, 장애 여부 등 다양한 인구집단의 특성과 욕구가 존재한다는 점은 쉽게 지워지곤 한다. 홈리스라는 조건이 같더라도 성별에 따라 처하게 되는 환경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다. 여성 홈리스의 삶과 욕구가 잘 가늠이 가지 않는 건 이들이 충분히 드러나거나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홈리스 문제는 경기 침체로 인한 남성 가장의 실직 문제로만 다뤄졌고, 여성 홈리스는 자연스럽게 홈리스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구성원을 없다고 치부한다고 해서 없는 존재가 될 수 없다. 몰랐겠지만 혹은 모르고 싶었겠지만, 여성 홈리스는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다.


여성 홈리스가 바라본 거리

거리에 선 홈리스는 동정 혹은 두려움이 담긴 시선을 끊임없이 받는다. 그 시선의 주체와 대상을 뒤집어보자. 여성 홈리스의 시선에서 본 거리와 사람들은 어떠할까? 집을 떠난 지 12년째인 로즈마리님(별칭)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거리에 여자들은 별로 없어요. 거리에 있기 불편하기도 하고, 있으면 남자애들이 닭 쪼듯이 쪼대요. 하도 욕설을 퍼부어서 보통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못 견뎌요. 내가 아무것도 안했는데도 (급식소에) 밥 먹으러 가면 왜 이런데서 밥 먹냐고 욕을 하고, 약을 타러가도 여자가 있어서 약타는 게 늦는다고 욕을 해. 하루는 밥을 먹으러 아침 7시에 따스한 채움터에 갔는데 70명 정도 남자들이 있고, 여자는 나 혼자야. 고개를 있는 대로 숙이고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 앉은 남자가 대놓고 나보고 꼴린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는 안 되겠다 하고 다시는 안 갔어요. 밥 한 두 숟갈이라도 먹으려고 간 건데. 이래서 여자들이 안 오는구나 싶었어요.”


거리에 있는 여성 홈리스는 쉽게 눈에 띈다. 그리고 쉽게 위협과 희롱의 대상이 된다. 얼마나 자주 폭언을 경험하느냐는 질문에 어딜 가든 다 그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역 다시서기 일시보호시설에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방에 가려고 복도를 지나갈 때면 남성 홈리스들이 쳐다보고 같이 살자며 말을 걸어온다. 여성 홈리스가 혼자 다니면 “남자들이 턱 쳐들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 늘 직간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공원이나 광장처럼 트인 곳에서는 잘 수 없다. 여성임을 드러내지 않으려 남장을 하거나 홈리스 상태임을 숨기려 청결을 유지한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내내 걸어 다니는 때도 있는데 모두 거리 도처에 놓인 폭력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다.


▲“살아남기보다 살아가는 것. 여성 홈리스들은 생존을 넘어선 삶을 그리고 바란다.” <사진 출처=미스핏츠>

생존 너머의 삶
한글반 학생인 반짝이님은 일주일에 5일은 공공근로를 하고, 쉬는 날에는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과 인권지킴이 활동을 한다. 공장에서 일할 땐 너무 힘들어 그만둬야 했거나 일을 하고도 월급을 받지 못해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공근로는 다르다. 8시부터 13시 반까지 공원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고되지만, 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훨씬 낫다.


로즈마리님은 홈리스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쉴 때면 역사에 앉아 TV를 보거나 성경을 읽는다.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떨고 얘기할 때가 제일 좋지만 정작 친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매일 머리를 맞대고 자는 사이이고, 아무리 서로 얘기를 많이 해도 “막 가져가서” 짐도 맡길 수 없다. 누군가 잘 곳이 생기면, 다른 사람이 자기도 데려가서 자게 해달라고 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다.


극심한 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당장은 여성 홈리스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여성을 위한 일시보호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잘 곳이 있고 굶지 않는 게 삶을 구성하는 요소 전부는 아니다. 공용시설을 보급하고 눈치 보며 먹어야 하는 밥과 맞지도 않는 옷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여성 홈리스의 욕구를 담아낼 수 없다. 살아남기보다 살아가는 것.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에서 소속감이나 편안함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 내 역할이 필요한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취미생활을 하고, 미래를 꿈꾸며 하루를 보내는 것. 각자의 삶의 종류만큼 삶의 의미 또한 제각각이고, 여성 홈리스들도 생존을 넘어선 삶을 그리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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