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특집]

 

 

조선일보 '인천공항 노숙인' 보도가 말하지 않는 사실들

지원체계 결함 외면한 채 차별적 조치 강조하는 언론

 

 

<안형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제목 없음.jpg

 

 

지난 6월 29일 조선일보 B8면에 난데없이 인천공항 내 거리홈리스를 조명하는 기사(“노숙자의 새 성지(聖地) 인천공항…서울역과 달리 옷차림은 깔끔”)가 실렸다.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이영빈 기자가 작성한 해당 기사의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깔끔하고 시설까지 좋은 노숙자들의 ‘핫 플레이스’가 등장했다. 그들에게는 집 아닌 곳이 따로 없겠지만, 여기는 조금 새롭다. 인천국제공항이다.

 

계속해서 기사는 인천공항 거리홈리스의 ‘특별함’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이곳 홈리스들은 지하철 역사에서 노숙하는 이들과는 달리 “나름 깨끗한 차림에 고성을 지르지도 않고, 술 취해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홈리스를 판별해내기 어렵다고 기사는 강조한다(물론 기사에서 제시된 ‘확실한’ 홈리스 판별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코를 찌르는 체취”다).

 

이상의 강박적이고 구구절절한 묘사 끝에 조선일보가 내린 결론이란 인천공항 내 홈리스가 “눈에 띄지만 않을 뿐 여전히 무법자”라는 것이다. 이어 홈리스의 절도로 물품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인근 편의점 점주, 홈리스 관련 신고가 많이 들어오지만 대부분 기소유예에 그쳐 처벌하기 어렵다는 인천공항경찰대 관계자, 홈리스가 점포에서 행패를 부려도 무력을 행사할 권한이 없어 구두로만 경고한다는 공항 보안요원의 발언을 차례로 소개한 조선일보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말로 나아간다.

 

세계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공항 중 하나인 미국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도 지난해부터 노숙자가 크게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 당국은 공항 출입에 제한을 두고, 인근에 노숙자 쉼터를 늘려 숫자를 줄여 나가는 중이다. 미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공항 노숙자가 급증할 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새벽 일정 시간 동안에는 비행기 표를 가진 사람만 머무르게 하는 조치와 노숙자가 공항을 떠나 갈 곳을 연결해 주는 대책이 동시에 있어야 숫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언뜻 보기에는 해외 사례를 곁들여 국내 전문가의 처방을 단순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조선일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다른 이의 입을 빌려 에둘러친 것에 다름 아니다. 각지의 홈리스가 인천공항으로 유입되는 이유를 공항의 “깨끗하고 좋은 시설”에서 찾고, 공항에서 머무르는 홈리스를 “무법자”로 단정 짓는 해당 기사의 전반적인 논조를 감안할 때, 기사의 결론부에서 공항출입 제한조치의 시행과 더불어 시설입소를 강조하는 처방이 내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조선일보의 진단과 처방은 과연 적절하고 올바른 것일까?

 

 

공항으로 바캉스 즐기러 온 홈리스?
조선일보가 말하지 않는 사실 하나, ‘주거권’

 

노숙자들이 각지에서 인천공항으로 입성(入城) 중이다. 공항은 일반 노숙자들이 머무는 길거리보다 훨씬 쾌적하다. 사시사철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눕기 편한 벤치도 흔하다. (...) ‘공캉스(공항+바캉스)’를 즐기러 왔다는 서울역 출신 노숙자 정모(64)씨는 “덥지 않고 시설도 좋다”며 “많이 더워지는 7~8월 중에 한 번 더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인천공항이 쾌적하고 깨끗하며 안전한 공간이기에 각지의 홈리스가 모여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꿔 말해 이는 오늘날 홈리스가 이용 가능한 ‘쾌적하고 깨끗하며 안전한 공간’이 거의 없거나 줄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의 표현을 빌자면, 홈리스에겐 “사시사철 적정 온도가 유지”되고 “눕기 편한” 공간이 결여돼 있다. 물론 이것이 적정 주거의 부재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처럼 전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둘 수밖에 없었단 까닭은 해당 사안을 ‘주거권’ 이슈로 다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정 주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잠자리 장소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노숙인에게 집 아닌 곳이 어디 있냐”고 강변하는 기자의 눈에 인천공항 거리홈리스는 그저 “공캉스(공항+바캉스)” 즐기러 온 “무법자”로 비칠 따름이다.

 

 

미리 대처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말하지 않는 사실 둘, ‘지원체계의 결함’

 

일면적이고 선험적인 가치판단에서 출발한 분석이 잘못된 결론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관계를 곡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하는데,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 역시 이에 해당한다.

 

기사 말미에 조선일보는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사례로 들면서, 해당 공항 또한 인천공항처럼 “노숙자가 크게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에 “시 당국은 공항 출입에 제한을 두고 인근 노숙자 쉼터를 늘려 숫자를 줄여나가는 중”이라 전했다.

 

하지만 이는 고작해야 절반의 진실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상주하는 홈리스의 수가 증가한 것과 그 대책으로 공항출입을 제한하고 공항 보안요원들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가 시행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지 언론인 애틀랜타 저널(AJC)에 따르면, 애초 해당 공항의 홈리스의 수가 증가한 것은 인근 지역에 위치한 정원 500명 규모의 대규모 임시보호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출입제한을 포함한 여러 차별적 조치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홈리스가 공항을 찾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언급하지 않은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애틀랜타 공항에서 홈리스가 줄고 있는 이유가 단지 “인근 노숙자 쉼터”를 늘렸기 때문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현지 언론들은 이것이 애틀랜타 시당국과 공항, 경찰, 민간기관이 협력하여 적극적인 지원활동에 나섰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공항 내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홈리스 아웃리치 팀의 활동이 공식화됐고, 공항에서 자동차로 15분가량 걸리는 곳엔 생색이나마 홈리스의 영구적인 주거확보를 목표로 하는 게이트웨이 센터가 문을 열었다. 아웃리치 팀과 공항 경찰은 게이트웨이 센터로 가길 희망하는 홈리스에게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곳은 한국의 종합지원센터에 준하는 기관으로 진료소는 물론 일시보호시설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조선일보가 말하듯 단순한 “노숙인 쉼터”와는 거리가 멀다. 이쯤 되면 기사 게재를 승인한 조선일보 데스크의 수준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만약 조선일보가 진정으로 애틀랜타 공항의 사례를 통해 인천공항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 것이라면, 두 지역 간 홈리스 지원체계의 차이부터 점검했어야 했다. 애틀랜타 시에 견주어 볼 때, 인천공항이 위치한 인천시의 지원체계는 어떨까? 2018년 12월 기준 인천시내 노숙인 시설은 자활시설 두 곳, 요양시설 세 곳, 재활시설 한 곳이 전부다. 종합지원센터는커녕 <노숙인복지법>에 따른 일시보호시설조차 없는 상태다. 임시방편으로 과거 부랑인 수용시설이던 은혜의집(현재는 재활시설)에서 일시보호시설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는 있으나, 그마저도 예산과 인력 문제로 운영 시간이 축소되는 등 불안정하게 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3년 「인천광역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설립 논의가 시의회 차원에서 이뤄진 바 있으나, 당시 인천시는 ▲종합지원센터의 설치가 법적 강제사항이 아닌데다, ▲거리홈리스의 경우 서울과 같이 지원체계가 양호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으며, ▲시내 거리홈리스의 수(당시 139명)가 많지 않아 예산을 추가로 들일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센터 설립을 무산시킨 바 있다. 이후 인천시가 그 구체내용을 알 수 없는 “중장기적 과제”를 검토하는 동안, 2018년 기준 인천시내 거리홈리스의 수는 159명으로 5년 전에 비해 되레 늘었다. 물론 이 숫자에 인천공항 홈리스의 수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미지수다. 인천시에서는 서울시에 준할 정도의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시스템의 결함을 문제 삼아야

시스템의 결함이 아닌 시스템의 피해자를 문제 삼는 것은 쉬운 길이긴 하나 올바른 길은 아니다. 인천공항 홈리스 이슈가 “미리 대처”해야 할 정도의 중한 사안이라면, 조선일보는 인천시 홈리스 지원체계의 심각한 결함을 지적하고 여기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먼저 비판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것은, 조선일보가 택한 이 ‘쉽지만 그릇된 길’에 다른 언론사들마저 발을 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논한다”는 언론(言論)의 이름값이 아쉬워진 요즘이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16 <홈리스뉴스 102호> 똑똑똑 - 창신동 쪽방촌과 동숭동 대항로 사이 파일
홈리스행동
129 2022-08-25
915 <홈리스뉴스 102호> 김땡땡의 홈리스만평 - "노숙물품 치우기 연합?" 파일
홈리스행동
84 2022-08-25
914 <홈리스뉴스 101호> 특집 - 용산구청에 주거대책 요구했던 텐트촌 주민들, 진통 끝 임대주택 입주 신청 마쳐 파일
홈리스행동
202 2022-07-04
913 <홈리스뉴스 101호> 진단 - 복지부가 만든 의료공백, 메우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몫 파일
홈리스행동
147 2022-07-04
912 <홈리스뉴스 101호> 이달의 짤막한 홈리스 소식 - 인권위, "노숙인 혐오 조장하는 게시물 부착은 인격권 침해" 파일
홈리스행동
114 2022-07-04
911 <홈리스뉴스 101호> 꼬집는 카메라 - 동의하지 않으면 계속 살 수 있을까? 파일
홈리스행동
112 2022-07-04
910 <홈리스뉴스 101호> 동행 Ⅰ -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신청 동행기 파일
홈리스행동
88 2022-07-04
909 <홈리스뉴스 101호> 동행 Ⅱ - '멀고도 험한' 긴급복지지원, 기초생활수급 신청의 길 파일
홈리스행동
80 2022-07-04
908 <홈리스뉴스 101호> 진단 - 거리홈리스 현장지원 체계 똑바로 개편하길 파일
홈리스행동
158 2022-07-04
907 <홈리스뉴스 101호> 어깨걸기 - 용산 다크투어. "용산, 시대를 걷다" 파일
홈리스행동
91 2022-07-04
906 <홈리스뉴스 101호> 당사자 발언대 - "우리도 한 명의 인간입니다" / 용산역 텐트촌 주민 이창복 파일
홈리스행동
100 2022-07-04
905 <홈리스뉴스 100호> 특집 - '시설 중심' 벗어나지 못한 '제2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 파일
홈리스행동
246 2022-06-09
904 <홈리스뉴스 100호> 진단 - 영등포 소재 고시원 화재참사…고시원에 대한 주거ㆍ안전 대책 마련돼야 파일 [1]
홈리스행동
116 2022-06-09
903 <홈리스뉴스 100호> 꼬집는 카메라 Ⅰ - 고시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신속‘차별’키트 파일
홈리스행동
113 2022-06-09
902 <홈리스뉴스 100호> 꼬집는 카메라 Ⅱ - 테러 위험이 아니라, '짐'입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89 2022-06-09
901 <홈리스뉴스 100호> 100호 특집 - 애독자들의 축하의 한 마디! 파일
홈리스행동
82 2022-06-09
900 <홈리스뉴스 100호> 100호 특집 - 홈리스뉴스, 10년의 말들 파일
홈리스행동
77 2022-06-09
899 <홈리스뉴스 100호> 동행 -노숙인 지원기관 방문부터 임시주거지원 신청까지... "정해진 만큼이라도 보장하라" 파일
홈리스행동
127 2022-06-09
898 <홈리스뉴스 100호> 어깨걸기 - 21년을 외쳤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 이동권 투쟁 파일
홈리스행동
93 2022-06-09
897 <홈리스뉴스 100호> 기고 - [당사자 기고] "수급권자의 권리, 제대로 보장해야 합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75 2022-06-09
Tag Lis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