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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특집]


도 넘은 현장 경찰관들의 자의적인 법해석과 법집행, 경범죄처벌법 ‘구걸행위 처벌조항’ 폐기돼야
서울역 홈리스, 타인에게 ‘담배 한 개비’요청했다는 이유로 통고처분 받아



<안형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서울역파출소 소속 경찰, 사람들에 담배 한 개비 요청한 홈리스에 경범죄처벌법 적용, 통고처분 강행

홈리스를 표적 삼는 현장 경찰관들의 차별적이고 임의적인 법집행 관행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지난 2월 11일, 서울역 1번 출구 앞 흡연구역에서 사람들에게 담배 한 개비를 요청하던 남성 홈리스가 경범죄처벌법 위반(구걸행위)으로 경찰에게 통고처분*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용어 설명>

통고처분: 형사소송(법원)에 대신하여 행정기관이 벌금이나 과료(科料)에 상당하는 금액의 납부를 명할 수 있는 행정처분. 처분을 받은 자가 통고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때에는 그 효력을 상실하며 관계 기관장의 고발에 의해 형사소송 절차로 들어가게 된다.

※ 참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 


당시 현장에 있던 홈리스행동 활동가에 따르면, 통고처분을 받은 홈리스 A씨는 흡연구역 내에서 담배를 태우던 사람들에게 담배 한 개비를 요청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부터 담배를 건네받으려는 순간 서울역파출소 소속 경찰관(사진)에게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단속을 당했다.


직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해당 경찰에게 “구걸을 했다고는 하나 통행을 방해하는 등의 객관적 피해가 없었고, 제3자가 구체적으로 피해를 호소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법집행”이라며 항의했으나, 경찰은 ▲여러 사람에게 담배를 달라고 함으로써 불편을 야기했다는 점, ▲현재 구걸행위와 관련해 다량의 112신고와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범칙금 통고처분을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A씨는 범칙금 통고서를 발부받게 되었다. 그러나 담배 하나 살 돈조차 없어 ‘담배 구걸’에 나서야 했던 그가 5만원이나 되는 범칙금을 기한 내 납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범칙금을 내지 못할 경우 즉결심판에 회부돼 종국에는 노역장에 입감될 것이라는 데 있다. 즉, A씨에 대한 경찰의 통고처분은 단순 행정상의 제재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  홈리스 당사자 A씨에게 통고처분을 내린 서울역파출소 소속 경찰관. 단속과정에서 시종일관 고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던 그는“여러 사람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편을 야기하는 행위”라며 처분을 강행했다.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홈리스행동 활동가와 경찰 간 대화내용
(2019. 2. 11)
-현장 녹취록 요약 발췌 –


활동가: 왜 단속을 하는가?

경찰관: (구걸을 하여) 불편을 야기해서다.

활동가: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담배 하나 부탁했던 것이고, 더욱이 부탁받은 사람이 담배를 건네주려 했던 상황 아닌가.

경찰관: 한 사람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한테 담배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편을 야기하는 것이다.

활동가: 일선에서 법집행하시는 사람들이 이렇게 상황을 자의적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경찰관: 내가 보고 있는데도 사람들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그러면 (경찰더러) 단속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활동가: 단속의 대상이 아님에도 단속을 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불편 야기’는 (시민이 판단할 문제이지) 경찰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법조항 취지와 배치되는 차별적이고 자의적인 법집행

그렇다면 경찰이 강변한 바대로 A씨에 대한 통고처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그저 담배 한 개비를 요청했을 뿐인 A씨의 행위는 경범죄처벌법상 처벌대상인 ‘구걸행위’에 해당하는 것일까.


현행 경범죄처벌법은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을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서 범칙금 처분을 주도했던 경찰(앞면 사진 참조)은 해당 거리홈리스가 타인의 통행을 방해한 사실이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담배를 달라고 한 것 자체가 불편을 야기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처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타인을 ‘귀찮게’ 했으므로 처벌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해당 법조항의 입법 취지와 전연 배치되는 주장이다.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이라는 법적 규정은 지난 2013년 경범죄처벌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신설된 것으로(개정 이전까지 구걸행위는 그 자체 처벌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상기 규정이 “공공장소에서 위협적이거나 무례한 방법에 의한 구걸행위, 집요한 구걸행위 등”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며, “타인의 통행방해 등을 초래하지 않는 단순 구걸행위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바 있다. 모든 구걸행위를 처벌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구걸행위를 하다 즉결심판에 넘겨진 사람이 정식재판을 청구,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당시 법원은 해당인의 구걸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즉, 모든 구걸행위가 처벌대상은 아니며,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등 제3자의 피해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에 한해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단순 구걸행위 처벌 없을 것이라던 경찰, 현실은 우려했던 그대로


<경범죄처벌법의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2013)> 中
- 경찰청 생활질서과장 총경 김종보 -


“법개정으로 구걸행위를 하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처벌대상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길에 엎드려 적선을 부탁하는 수준을 넘어 행인에게 다가가 돈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욕설을 하고 길을 막는 행위 등을 벌하기 위함이다. (...) 개정법에서도 단순구걸행위는 처벌대상이 아니다. 본 조항의 입법 취지가 위와 같고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단순 구걸행위는 처벌대상에서 제외되므로 길에 엎드려서 적선을 요구하는 행위는 전혀 무관함을 다시 한 번 밝힌다.”


2013년 경범죄처벌법 개정 당시,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구걸행위자를 처벌하는 조항의 신설이 빈민에 대한 차별적이고 자의적인 법집행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해당 법령의 폐기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위의 표에서 보듯, 당시 경찰은 개정법 취지에서
벗어나는 단순 구걸행위에 대한 처벌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다. 결국 이번 ‘담배 한 개비’ 사건은 그간 시민사회단체의 우려가 전연 기우가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빈자 겨냥한 경범죄 처벌규정 폐기와 함께 위법성에 대응 어려운 삶의 처지 개선돼야
▲  지난 2013년, 구걸행위 처벌조항이 담긴 경범죄처벌법 개정 시행에 항의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사진출처=홈리스행동>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 2017년 출간한 「홈리스 법률지원 매뉴얼」에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홈리스뉴스 편집부와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의 경우 성과를 위한 과잉단속임이 강하게 의심된다”면서, “이런 사건일수록 정식재판을 청구해 관련 판례를 계속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적정 주거의 부재로 일상적 삶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홈리스가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정해진 절차대로 재판일정을 소화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설사 처분의 위법성을 당사자가 명확히 인지하고 있더라도 그 위법성을 법원에서 다퉈 무효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법은 경범죄처벌법의 모호한 기준과 불명료한 규정들을 폐기하는 한편, 법적 ․ 행정적 대응력을 갖추기 힘든 삶의 처지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에 있다. 후자의 경우 단기간에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경범죄처벌법의 문제는 다르다. 해당 법 제2조는 “이 법을 적용할 때에는 국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이 법을 적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 구걸행위 처벌조항은 이미 본래의 입법취지와는 전연 다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구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자들을 과잉처벌함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디 구걸행위 처벌조항만의 문제인가. 가난한 사람을 겨냥할 뿐인 모든 경범죄 처벌규정의 폐기,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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