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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거리두기’가 노숙인시설에서 작동하는 방식
수원시 M 노숙인시설, 코로나19 감염 예방 빌미로 입소인 퇴거 요구해



<응팡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그가 국가인권위 앞에 선 이유


▲   M 자활시설 문 앞에 붙어있던 '비상공지', 직장생활인의 시설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나는 수원시 M 자활시설(노숙인 자활시설)에서 지내던 2월 1일, 비정규직 택배기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2월 24일 시설 복지사에게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 시설 출입이 불가”하다는 내용이었다. ‘직장에 안 나가면 잘릴 텐데, 출근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자에 답을 하지 않고 시설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복지사가 와서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출근할 거라고 답했지만, 복지사는 일할 거면 시설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속수무책으로 다음날 출근길에 시설을 나와야 했다. 억울했다. 수원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시청에서 공문을 내려서 어쩔 수 없다는 시설 측 주장과 달리, 담당 공무원은 권고사항만 전했을 뿐 그런 공문은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시설에서 결정한 사항이므로 자기네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단다. 당장 내가 어떻게 사냐고 항의했더니, 한 달간 임시주거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고시원에 들어와 지내면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활시설이면 내가 일을 해서 빨리 일어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을 나가라고 하다니. 여기저기 알아보다 ‘홈리스행동’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그리고 3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M 자활시설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수원시 M 자활시설에서 퇴거당한 형철(가명)씨와의 인터뷰를 필자가 재구성해 작성했다.



노숙인시설은 노숙인 등 복지법에 따라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제21조)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노숙인‘자활’시설은 입소자가 머무는 동안, “자립을 지원하기 위하여 전문적인 직업상담ㆍ훈련 등의 복지서비스를 제공”(제16조)해야 한다. 하지만 수원시 M 자활시설은 규정이 무색하게도 감염 예방을 구실로 하루아침에 시설입소인을 시설 밖으로 내몰았다. 노숙인 등 복지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노숙인 등을 강압적으로 시설에서 퇴소시키는 행위를 금지”(제21조)한다. 홈리스를 지역사회에 정착시키기보다 시설로 분리하려는 사회에서, 시설 바깥으로 내쳐진 입소인들은 곧바로 생존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M 자활시설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부당한 퇴거를 종용했다. M 자활시설이 외부인과 접촉하는 직장인의 감염을 우려했다면, 그들이 개인 예방을 더 철저히 하도록 요구하고 마스크와 휴대용 손 소독제를 제공하면 된다. 퇴거할 거냐고 물었던 바로 그 복지사가 역설적으로 시설에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당하지 않은 퇴거 절차

▲  기자회견 당시 진행된 퍼포먼스. 검은 망토를 두른 노숙인자활시설이 '일자리'와 '주거'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사진출처=빈곤사회연대>

M 자활시설에 머물던 형철씨를 비롯한 입소인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재난 앞에 노숙시설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노숙인 지원체계가 제대로 된 작동을 멈췄다. 정부는 재차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며 상호 2m 건강거리 두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시설입소인은 2m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 형철씨는 7, 8명과 함께 방을 사용했다. 식사 또한 다른 입소인들과 함께 했다. 정부의 지침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곳, 정부의 지침을 따르기 위해선 생존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 시설이다.


M 자활시설 역시 감염 예방을 위해 별다른 고려 없이 입소인을 내보내기 급급했을 뿐이라는 사실이 비합리적인 퇴거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노숙인 등 복지법은 강제퇴소 사유와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제17조, 같은 법 시행규칙 제15조)한다. 절차대로라면 M 자활시설은 강제퇴소 과정에서 퇴소자에게 사유를 설명하고 퇴소 의사결정 과정에 입소인을 참여시켜야 한다. 그러나 형철씨는 퇴거 과정에서 적절한 정보를 받지 못했고 의사를 밝힐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 오히려 형철씨는 퇴거당한 지 4일 만인 2월 28일, 시설 측에게 퇴소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이는 노숙인 등 복지법상 퇴소 절차를 위배하는 일일뿐더러, 형철씨의 퇴소를 ‘자진 퇴소’로 처리하려는 시설 측의 꼼수에 가깝다.


일자리와 시설입소 중 하나를 고르라고?

M 자활시설은 입소인이 ‘시설입소’와 ‘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꼬박꼬박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는 시설운영자들과 달리, 비정규직 택배기사인 형철씨가 직장에 숙식 해결을 요청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M 자활시설의 입소인은 3월 5일 기준 16명으로 그중 2명은 자활사업 참여자, 7명은 일용직, 7명은 비정규직이다.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고 아무런 대책 없이 거리로 내쫓긴 입소인이 형철씨를 포함해 3명이고, 시설에 남은 13명은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진 입소인에게 일과 시설 입소 중 하나의 선택을 강제하는 일은 노숙인 등의 자활’을 목적으로 하는 노숙인 자활시설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할 뿐 아니라, 입소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적인 처사다.


그는 멈추지 않는다

노숙인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수원시청도 책임이 있다. 형철씨는 시청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권리 보호를 요청했다. 그러나 시청은 형철씨의 제보를 받은 뒤에도, ‘시설 내부의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면피용 답변만 늘어놨다. 시청이 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통해 형철씨에게 한 달간 임시주거비지원을 했지만, 이를 노숙인 지원 주체인 지자체의 책임 있는 조치라 보기 어렵다. 형철씨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M 자활시설 입소인을 위한 긴급구제를 촉구했고, 복지부는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자행되는 노숙인 인권침해를 적극적으로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긴급구제조치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설은 주거가 아니다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직후, 형철씨는 M 노숙인시설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시청 주무처의 요청에 의해 생활인들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고자 생활인 전체회의를 가지고자 합니다. 현재 외부 숙식을 하고 계시는 생활인분들은 반차를 내어 가능한 참석을 요청합니다. 회의 일시는 내일 오후 4시입니다.”


형철씨가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자, 시설 측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체회의인데 외부생활 직장인 당사자들의 참여의사가 없어서는 의미가 없으니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회의 불참으로 인한 외부 생활에 대해 이의가 없는 건지 확실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전체회의 이후, 일한다는 이유로 퇴거를 당한 3명 중 진정인 형철씨를 제외하곤 모두 직장을 유지한 채 해당 시설에 복귀했다. 시설 측이 기존 방침을 거둔 것은 다행이지만 시설복귀 여부가 마치 피해 당사자인 형철씨의 의사에 달린 것처럼 간주하는 시설의 태도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시설의 부당함을 고발했던 형철씨가 해당 시설로 돌아가 이전처럼 생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청했던 정부의 지침을 M 노숙인시설이 입소인을 퇴거하는 방식으로 따랐고, 이후 수원시청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던 탓에 형철씨가 시설 밖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지침이 ‘모든 국민’을 향한 것이라면, 그 지침은 형철씨를 비롯한 모든 노숙인시설 입소인도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자가격리가 가능한 적정주거에서 사는 일 말이다. 국가인권위는 서둘러 시설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징계를 권고하고, 형철씨가 시설 밖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주거 지원을 권고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형철씨를 비롯한 노숙인시설 입소인 모두,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설은 주거가 아니다. 국가인권위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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