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9 홈리스추모제-동료를 위한 추모’ 현장스케치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아홉 번째 다짐



<김인손, 안형진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열아홉 번째 홈리스추모제

▲  2019 홈리스추모제 당일,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추모영정 현수막을 바라보는 홈리스 당사자의 모습 <사진출처=홈리스행동>.

2001년 시작된 ‘홈리스추모제’가 열아홉 해를 맞았다. 매년 동짓날을 기해 열리는 홈리스추모제는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 당사자를 추모하는 자리이자,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막지 않는 현실을 고발하며 홈리스 권리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요구를 모으는 자리이기도 하다. 홈리스추모제가 열린 지난 19년 동안, 변화가 없진 않았다. <노숙인 등 복지법>이 제정되었고, 이러저러한 지원책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권리가 아닌 자립에 둔 법제와 이에 기초한 제한적·한시적 지원책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변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홈리스 상태에 놓인 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떠밀고 있다.


이에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하 기획단)은 다시 한 번 홈리스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인권의 진공상태에 다름 아닌 홈리스 상태를 지양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에 나섰다. 2019년 12월 16일, 기획단은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추모주간을 선포하고 홈리스 사망자 추모를 위한 활동을 개진했다. 추모주간 동안 기획단은 ‘양동 재개발지구 쪽방 주민 실태 발표 및 서울시 대책 요구 기자회견’(18일), ‘홈리스 명의도용 과세처분 무효 확인 소제기 기자회견’(19일) 등을 열고 홈리스의 당면 문제의 해결과 열악한 복지지원의 개선을 요구했다.



추모주간 마지막 날 열린 ‘2019 홈리스추모문화제’

▲  2019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홈리스기억의계단’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홈리스추모주간 마지막 날이던 2019년 동짓날, 서울역 광장에서 ‘2019홈리스추모문화제’가 진행됐다. 기획단은 이번 추모문화제의 기조를 “동료를 위한 추모”로 정하고, 홈리스 당사자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문화제를 구성했다. 본격적인 추모 문화제에 앞서, 사전행사를 즐기기 위해 모인 당사자들과 서울역을 지나가다 호기심에 얼굴을 비추는 시민들까지 많은 인파가 서울역 광장에 몰렸다.


이날 광장에는 여러 개의 간이 부스가 설치되었다. 홈리스 법률상담 부스에서는 명의도용, 요양병원 유인, 채무 및 형사사건 등 홈리스가 일상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법률 문제를 현장에서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홈리스 사진관 부스에서는 방문하는 당사자들에게 무료로 증명사진을 찍어 발급했다.  부스 인근에서는 각종 마당놀이가 진행됐다. 노숙탈출윷놀이, 삼행시짓기, 액운날리기 등을 함께 즐기며 고난했던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 배제와 낙인이 사라지기를 기원했다. 광장 한켠에는 2019년 한 해 동안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를 추모하는 제단이 마련되었다.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추모문화제와 추모행진
사전행사가 모두 마무리된 저녁 7시, 서울역 광장 내 계단 앞에서 본행사인 추모문화제가 시작됐다. 추모문화제는 가수 정태춘, 무용가 이삼헌,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교사들의 추모공연과 더불어 홈리스 당사자 3인의 ‘동료를 위한 추모사’(본지 6면 참조), ‘2019 홈리스추모제 권리선언 낭독’으로 구성됐다. 추모문화제는 2019년 한 해 동안 사망한 무연고자, 거리홈리스, 쪽방촌과 고시원 주민, 빈민층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의미의 행진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하는 죽음이지만, 이날만큼은 추모행진을 통해 내 옆의 “동료”로서 서로를 추모하고 기억했다.


다른 세상이 오길 기원하며
매년 동지는 돌아오고 추모제는 반복된다. 그러나 홈리스를 양산해내는 조건과 홈리스에 대한 배제와 차별에는 눈감은 채 오직 자활과 자립만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19 홈리스추모제 권리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은 물론 죽음조차 존엄할 수 없었던 떠나간 동료들을 추모하며, 존엄이 박탈된 삶과 죽음을 당연시하는 세상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존엄을 지키지 못하는 죽음이 사라지고 모두가 집다운 집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 그것이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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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추모행진에 참여한 사람들. 그 뒤로 홈리스 지원기관의 모습들이 보인다. <사진출처=홈리스행동>.



2019 홈리스추모제 권리선언


우리는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홈리스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한다. 하지만 우리의 추모는 죽음을 수용하고 다시 세상을 살자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의 추모는 멈출 수 있는 죽음을 용인하는 세상에 반대하고, 그럼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삶은 물론 죽음까지 힘겨웠던 떠나간 동료들을 추모하며, 존엄이 박탈된 삶과 죽음을 당연시하는 세상에 반대할 것을 다짐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 추모와 애도를 누릴 권리 보장하라.
어떤 삶을 살았건,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선 안 된다. 어떤 삶을 살았건, 애도와 추모의 권리를 박탈당해선 안 된다. 마지막 인사조차 충분히 나눌 수 없고, 언제 어디서 왜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은 바뀌어야만 한다.


하나. 집다운 집에 살 권리를 보장하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더 나은 주거를 원하는 사람을 내몰지 마라. 자립과 자활을 앞세워 쾌적한 집, 안전한 집, 집다운 집에 살 권리를 막지 마라. 사람은 거리가 아닌, 시설이 아닌, 방이 아닌 집에서 살아야 한다.


하나.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가난하다고 해서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선 안 된다. 가난하다고 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선 안 된다. 건강을 악화하고 죽음을 가깝게 만드는, 이윤만을 위한 의료를 이젠 멈춰야 한다.


하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공공기관이 자행하는 혐오와 멸시를 멈춰라. 삶의 유지에 필요한 행위에 무질서라는 낙인을 부과하지 마라.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지 말고, 삶의 유지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때 조건을 붙여 희롱하지 마라.


거리에 머문다는 이유로 검문과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폭력이다. 불법적이고 약탈적인 치안행정을 멈추고, 명의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라. 열악하고 부족한 복지지원조차 여성이 닿기에는 버겁다. 여성에게 필요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고, 원하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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