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명의범죄 피해]

사각지대 내몰리는 명의범죄의 피해자, 홈리스

김도희 /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요즘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시대지만 먹을 것도, 갈 곳도, 기댈 이도 없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 이들은 거리를 전전하다 불심검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자의든 타의든 시설이나 병원을 거처로 선택하기도 한다. 쉽게 경제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점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홈리스 상태의 특징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인간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노동력이나 성을 착취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신용을 착취하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에는 현재의 경제성만을 착취했다면 이제는 미래의 경제성마저 착취하는 것이다. 

날아드는 세금고지서에 우울증만 심해져
어릴 적부터 뇌전증과 강박장애 등의 질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J씨는 2010년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하던 중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남성의 말에 속아 인천의 모처로 옮겨져 건장한 남성 3명에게 감시와 폭행을 당하며 감금 생활을 하였다. 3개월 가량의 감금 생활 동안 이들은 J씨를 끌고 다니며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발급받게 하고, 사업자 등록, 예금계좌 개설, 5대의 자동차 신규 등록 등을 하게 하였다. J씨는 진료를 받으러 나온 길에 탈출해 가까스로 감금생활에서 벗어났으나 지금까지도 세금 체납, 과태료 부과 등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  O씨가 감금돼 있던 여인숙 골목. 재개 발사업으로 지금은 다 철거되었다.
O씨는 지적장애 여성으로, 서울역에서 지내다 현재는 쪽방에 거주중이다. 2010년 모르는 남성 2명이 접근하여 청량리역 근처 여인숙에 세 달간 감금되었다. 감언이설과 협박에 못 이겨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등의 서류를 발급받아 건네주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지 못하였다. 이후 O씨 이름으로 유흥업소의 개업신고와 사업자등록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홈리스인권단체와 지인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남성 2명을 고소하였으나 소재불명을 이유로 현재 참고인중지 상태이며 역시 수 천 만원의 조세채무가 청구되고 있다. 

M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0년 밀린 방세를 내주고 휴대폰을 개통해 주겠다는 지인의 꼬임에 넘어가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등을 떼 주었다. 같은 노숙인 시설에서 만난 사람이니 나쁜 짓을 할리 없다 믿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음 날 본인의 서류를 사용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지인은 알겠다고 했지만, M씨 앞으로는 알지도 못하는 휴대폰이 6대 개통되었으며 2개의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있었다. 예금통장이 사기범죄에 이용되어 피해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 4건의 형사사건에서 전부 무혐의처분이 확정되었지만 수 천 만원의 세금고지서는 여전히 M씨를 괴롭히고 있다. 

명의범죄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형벌화 조치
최근에는 소위 대포통장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기관에서도 철저히 본인확인을 하고 용도를 제한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어느 정도 자정기능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명의대여자의 책임이라는 그럴듯한 민법의 원리는 여전히 추운겨울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간절한, 취업이나 경제적 지원이란 미끼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들을 가혹하게 매질한다. 전자금융거래법에서는 통장이나 카드를 대여 받은 자뿐만 아니라 대여한 자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 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 이는 명의범죄 피해자들을 대하는 국가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실상 형벌화 조치이다.

억울한 마음에 고소를 해도 자신을 범죄에 이용한 자들은 이미 잠적해 버렸으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파산을 하거나 압류된 통장에서 최저생계비를 돌려받는 정도다. 이마저도 소송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절차가 간단치 않기 때문에 법률서비스 접근성이 낮은 이들에게는 엄두내기도 어렵다. 어렵게 찾아 간 국세청의 납세보호담당관실에서는 3천 만 원 이상의 세금이나 법인 체납은 결손처분이 안 된다는 답변뿐이다. 과거 흑인 노예들은 족쇄를 풀면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명의범죄 피해자인 홈리스들은 족쇄를 풀어도 평생 빚이라는 또 다른 족쇄 속에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발목 잡고, 복지사각지대로 내모는 국가
금융 내지 개인 간의 채무를 해결하는 개인파산제도로도 풀 수 없는 빚이 있다. 바로 세금, 벌금, 사회 보험료다. 기업에 진 빚은 없애도 국가에 진 빚은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다는 의미이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라치면 체납된 세금이라며 압류해 간다. 기초생활수급이나 임대주택 신청을 해도 사업장이 있고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하기 십상이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빈곤의 나락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2014년 노숙을 하던 중 명의를 도용당한 지적장애인 B씨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도움으로 부가가치세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결국 법원 조정절차를 통해 부과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2019년 홈리스추모제를 즈음하여 홈리스 명의범죄로 부과된 과세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시작하려 한다.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모두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경제적으로 궁박하고 사회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 평등이 아니며, 실제로 이익을 보거나 소득을 얻지 않은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조세정의가 아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이들의 재기를 막고 복지청구권을 짓밟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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