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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발자국]은 쪽방에서 살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쪽방에도 닿지 못했던 삶, 고(故) 김한수 님을 떠나보내며...



<강민수 / 전, 동자동사랑방 운영위원>


7월 20일(월) 아침 7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근무시간 전부터 전화를 할 일이 없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김한수 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몰라 멍하기만 했다.


 김한수 님이 만 66세 나이로 요양병원에 있다가 돌아가셨다. 사인(死因)은 한쪽만 남은 다리마저 괴사가 진행돼 생긴 패혈증과 폐렴 증상. 그가 숨을 거둘 때, 가족들과 친구들은 아무도 곁에 없었다.


▲  생전 고인의 모습 <사진 출처=글쓴이>

그의 죽음은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 그가 떠나고 나에게 남은 건, 그의 죽음이 함께 애도해야 할 ‘사회적 죽음’이라는 생각과 어떤 ‘죄책감’이다. 서울역 거리와 ‘희망지원센터’에 열 달 동안 머물면서 썩어 들어간 다리를 좀 더 일찍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다리를 절단하기 싫다고 1월부터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돼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게 미안하다. 누군가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는데, 왜 아무도 막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난다. 누군가 막을 수 있었는데 아무도 막지 않았다면, 그건 사회적 죽음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열 달 동안의 시간이 있었고, ‘위기상황’에 놓인 그를 방치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의 책임이지만, 나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건 당신의 책임이고, 이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죽음을 모르고, 슬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슬프다.


김한수 님은 어떤 의미에서만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이었다. 집 주소를 동자동으로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만. 매달 25만 원을 꼬박꼬박 월세로 낸다는 의미에서만. 혼자서 휠체어를 밀고 다니기엔 방까지 가는 언덕이 너무 가팔랐고, 그나마 계단이 없는 1층 방을 골라도, 혼자서 턱을 넘나들 수 없었다. 좁은 복도에는 휠체어를 둘 수 없었고, 화장실은 재래식이라 앉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계약한 방을 바깥에서 곁눈질로 딱 한번 보기만 했다. 김한수 님이 살지도 못하는 방에 주소지를 둔 건, 기초생활수급과 주거취약계층용 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7년 동안 병원과 요양시설에 갇혀 살았다. 병원의 보호사들과 시설의 입소인들은 그가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이용해 상습적인 폭행을 일삼았다. 다시는 병원과 시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추위에 덜덜 떨어도 차라리 거리가 나았다. 어차피 평생 동안 병원 아니면 시설을 전전하며 살기는 싫었다. ‘새장을 나온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생계비와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근데 주소가 없는 ‘노숙인’은 주거취약계층으로도 기초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 수급권자로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들어가 살지 못할지언정, 주소지는 있어야 했다.


들어가지 못하는 방을 얻어놓고, 동주민센터에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을 신청했다. 그나마 LH공사보다 빨리 입주할 수 있다는 SH공사 주택으로. 신청하고 나서 SH공사에 확인해보니 주거취약계층용 주택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한다. 안 되겠다 싶어 LH공사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하려고 하니, 이번엔 이혼이 되어 있지 않다고 7년 전에 연락이 끊긴 배우자에게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한다. 연락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이혼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한다. 이혼 소송을 알아보니, 가족증명서에 배우자 주민번호가 나오지 않아 2년까지도 걸린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은 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이혼 정도는 쉽게 해야 하고, 이혼이 될 때까지 2년 정도는 거리에서 자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동자동 ‘주민’이니, 용산구청 주거복지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른 긴급지원대상자로 LH공사 ‘일반’ 전세임대주택(주거취약계층용보다 보증금을 400만 원 더 내는!)이라도 공급받도록 추천해달라고. 전례가 없는 일이고 특혜를 주는 일이라 안 된다고 했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전례를 만들지 못하면 전례는 언제 만들어지는가, 주거취약계층이라면 원래 신청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원래보다 못한 조건으로 신청만 하게 해달라는 게 특혜가 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장애 때문에 쪽방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노숙을 하는 위기상황이라고 하니, 동자동에서 휠체어를 타고도 잘 살아가는 분들을 여럿 보았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분들이 많은데,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해서 ‘위기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고 겨우 한 달여가 지나 김한수 님은 남아있던 한쪽 다리마저 썩어갔다. 작년 12월 말이었다. 병원에서는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고, 김한수 님은 죽어도 다리를 자르지 않겠다며 요양병원으로 갔다. 6월 19일, SH공사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매입임대주택에 선정이 됐다며 연락이 왔다. 신청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7월 20일, 김한수 님이 돌아가셨다. 연락이 닿은 가족은 장례를 포기했다. 아프게 남은 기억을 품기가 힘겹다고 했다. 7월 22일, 홈리스행동의 당사자 동료분들이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김한수 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그날, 김한수 님의 아드님도 왔다. 김한수 님이 생전에 자주 말씀하시던, 공항 관제소에서 일한다는 그 아드님인지도 몰랐다.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면 용기를 내어 찾아가 보겠다던.


김한수 님의 아들을 떠올리며 만약을 생각한다. 몸이 아파 위기에 처한 사람이 즉시 입주할 수 있는 긴급지원주택이 있다면, 휠체어를 타고도 살 수 있는 공공쪽방이라도 있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까? 그렇다. 분명 그럴 것이다. 살아 있을 테니. 계속, 살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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