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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5:46:44)

<발자국>은 쪽방에서 살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볕 좋은 오후의 기억



최봉명 <돈의동 주민협동회, 간사>


참 따뜻한 햇볕이다.

종일 비가 내리고 우중충했던 어제를 겪고 난 오늘 오후의 햇살은 참 좋기만 하다. 생각해보니 그날도 오늘처럼 맑은 하늘이 한창이었다. 우리 돈의동 주민사랑방이 익선동에 있었을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상에 앉아 돈의동 형님들과의 잦은 술자리로 밀린 사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좀 졸립기도 했고, 이래도 되나싶게 졸립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그 평화를 깬 한통의 전화가 있었다. 한 활동가에게서 다급히 온 전화소리였다. 대뜸 ‘지금 어떠냐?’ ‘다친 사람은 없냐?’라며 묻는데 뭔소린가 했다.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난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급하게 신을 신고 문밖을 나서 돈의동으로 달려갔다. 한 100m 쯤 갔을까, 소방차가 돈의동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를...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하느님께도 빌면서 현장에 다다랐다.


2018년 1월 5일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때, 돈의동 쪽방촌의 한 목조주택에서 불이 시작되었다. 이 화재로 61세의 이OO씨가 인근 인제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 거두셨다. 화제는 2층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휴대용버너를 사용하던 중 불이 이불로 옮겨 붙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을 내고 도망간 사람은 처음에는 불을 끄려고 했으나 삽시간 번지는 불 때문에 자기도 죽겠다 싶어서 도망쳤다고 한다. 이렇게 번진 불은 아래의 이씨가 사는 방으로 번졌고 마침 이씨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어서 탈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화재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것을 보며 ‘이건 뭐지’ 하는 황당함과 왠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답답함에 그곳 주민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늘 상 있는 일 곧 일상이라는 것이다. 일상이라... 일상은 당연한 것, 순간순간 겪는 일,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 그래서 특별히 기념하거나 기릴 필요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마치 밥을 먹듯이 말이다. 마치 숨을 쉬듯이 말이다. 그런데 내 이웃이 죽었는데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인가?


돈의동 주민협동회 주민들은 그날 밤 늦게까지 그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분이 살던 곳에 자그마한 빈소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또 누가 빈소를 쓰레기장에 버렸다. 범인은 마을 주민이었다. 그런데 시킨 사람이 있었다. 그 집의 집주인이었다. 나는 집주인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냐’였다. 순간 흥분을 하고 말았다. 찰진 욕은 하지 않았지만 내 목소리가 커지는 건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 1년이 되는 날, 우리 돈의동 주민협동회는 그분을 기억하며 추모식을 하였다. 기일을 지낸 것이다. 그 후 그분과 유사한 죽음이 지금도 있다. 이분들을 기억하고 추모식을 하는 이유는 그분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과 그 상실을 치유하고 다시는 안타까운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다짐하고 다짐하기 위함이다. 칼을 간다.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을 도려내기 위해,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것을 잘라내기 위해 그 시간이 되면 칼을 간다. 우리 돈의동 주민협동회는 이후 망자가 된 회원들을 위해 3일장을 지내고 기일을 지킨다. 그리고 회원이 아니더라도 동네에 살던 분이 무연고자가 되면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서울승화원에 달려가 고별식을 한다. 이러한 일은 주민회에서 장례위원회를 조직해서 함께 하고 있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것, 그건 결국은 산자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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