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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43089
2011.09.29 (12:36:36)

[e-세상 속 이 세상]노숙인들의 고달픈 삶, 런던이나 서울이나 똑같아

글 최명애 http://ecotraveller.khan.kr
입력 : 2011-09-27 20:25:33수정 : 2011-09-28 00:29:31
 

얼마 전에 영국 런던 스트랜드 거리에서 하는 가이드 투어를 하나 다녀왔는데, 알고 보니 ‘노숙자 투어’였습니다.

스트랜드 거리는 워털루 다리에서 코벤트 가든을 지나 트라팔가 광장까지 이어지는 대로입니다. 일년 내내 관광객들로 복작거리는 곳인데 거기를 ‘노숙자의 눈높이’로 다시 보자는 투어였습니다. 킹스칼리지 런던 지리학과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하는 일종의 ‘지역 역사 기록하기’ 작업인데 인상적이었습니다.

투어는 한 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출발지는 코벤트 가든. 시장도 있고 길거리 공연도 많이 열리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입구에 극장이 하나 있어요. 이 극장이 이 일대 노숙인들의 보금자리랍니다. 쇼가 끝나고 관객도, 직원들도 돌아가고 나면 노숙인들이 회랑 아래 계단에서 잠을 잡니다. 처마가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거든요. 여기로 오는 노숙인은 ‘오직 수면’ 노숙인들과 ‘음주 수면’ 노숙인의 두 부류랍니다.

 

런던 명소에 붙어있는 안내판 ‘플라그’를 패러디해 노숙인 프로젝트 팀에서 만든 ‘블루 플라그’. |사진 www.strandlines.net


런던의 노숙인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가 ‘길거리 노숙인’입니다. 이 분들은 정말 길에서 주무신대요. 생계 수단은 구걸. 폭력에 휘말려드는 경우도 많고요. 두번째가 ‘음주 수면’ 노숙인들. 술을 꼭 드시고 주무십니다. 세번째는 정말 잠만 자는 ‘오직 수면’ 노숙인들입니다. 코벤트 가든 극장의 정면은 ‘오직 수면’ 노숙인들 잠자리, 측면은 ‘음주 수면’ 노숙인들의 숙소랍니다.

코벤트 가든을 지나 레스터 스퀘어 뒷골목으로 갔습니다. 이 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킹스칼리지 교수님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노숙인을 만났는데, 정말 좋은 데가 있다며 이리로 안내해주어 알게 되셨답니다. 건물들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외벽을 수리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조용한 구역입니다. 여기서도 몇몇 노숙인들이 잔답니다.

런던의 명소인 트라팔가 광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광장 뒤 세인트 마틴 교회 뒷벽에는 빨간 문이 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열려 있는 ‘오픈 도어’랍니다. 배고프고 잠잘 곳 없는 노숙인은 누구라도 이 문을 두드리면 재워주고 먹여 준답니다. 이 빨간 문은 1·2차 세계대전 때부터 있었대요. 그 때는 노숙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근처에 차링크로스 역이 있는데, 거기로 군인들이 많이 돌아습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군인들을 위해, 갈 곳 없으면 오라고 만들어 놓은 시설이었답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노숙인들이 이용합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노숙인들의 삶은 고달프죠. 노숙인들을 쫓아 내려는 상점들과, 비를 가릴 지붕이 필요한 노숙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투가 벌어집니다. 쇠창살을 두르기도 하고, 바닥에 칸막이를 설치하기도 하고 온갖 묘수가 다 나옵니다. 그 중 ‘최신 버전’ 장치는 스프링클러입니다. 처마에 스프링클러를 달아 몇 시간에 한번씩 물을 뿌립니다. 잠 자다 물벼락 맞은 노숙인들이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좀 매정하게 느껴집니다.

차링크로스 역 뒤편으로 내려오면 멋진 문이 하나 있습니다. 템스강을 정비하기 전에, 강물이 넘치는 걸 막으려고 만들어 놓은 ‘워터게이트’입니다. 어느 귀족의 빌라에 붙어 있던 거라는데 지금은 공원의 장식물처럼 쓰입니다. 이 문은 여러 지역에서 온 벽돌들을 쌓아 만들었다는군요.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여기서 잠자던 노숙인 출신 벤(가명)이 벽돌공 출신이거든요. 가게가 망한 뒤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상경한 첫날, 벤은 이 문 앞에서 자다가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았습니다. 그리고 노숙인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노숙자 자립을 위한 잡지인 ‘빅이슈’를 열심히 팔고 고생고생해서 지금은 윔블던의 ‘지붕 있는 집’에서 산답니다.

그런데 요새는 노숙인들이 ‘빅이슈’를 열심히 팔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잡지 판 돈을 꼬깃꼬깃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그걸 훔치려는 강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을 일이지. 노숙인이 은행 계좌가 있길 하나, 몸에 지니는 수밖에 없으니 그냥 밥 먹을 만큼만 판다고 합니다.

워터게이트 문 옆으로 따라가면 노숙인들의 숙소가 또 나옵니다. 이 일대에는 아치형 다리가 많습니다. 템스 강물이 넘실거리던 시절, 이 지역을 ‘영국의 베네치아’로 만들겠다며 아치들을 놓았답니다. 하지만 런던이 베네치아가 됐을 리는 없고, 다리들은 이제 비둘기와 노숙인들의 쉼터로 쓰입니다.

노숙인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싹틉니다. 잠자리 옆에 한 노숙인이 사인을 남겨놓았습니다. ‘잭 온 투어 95’. 잭은 맞은편에 사인을 남긴 여성 노숙인 베티와 사랑에 빠져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났답니다.

런던의 명소들엔 파란 표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유명인 누구누구가 살았고 어떤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안내판인데 ‘플라그’라고들 부릅니다. 노숙인 프로젝트에서는 이 플라그를 패러디해 ‘블루 플라그’라는 걸 하고 있습니다. 노숙인들의 역사도 런던 역사의 일부분이니만큼, 플라그 형태로 만들어서 구글지도에 기록을 하는 겁니다. 이런 식입니다. “네이슨이 2010년 9월11일 아이팟을 잃어버린 곳.” 네이슨이라는 노숙인은 아이팟이 있었나보죠? 플라그의 자세한 내용과 노숙인들 이야기는 이 프로젝트 홈페이지(www.strandlines.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숙인 쉼터로 쓰이는 런던 트라팔가 광장 뒤편 세인트 마틴 교회의 빨간문(사진 왼쪽)과 노숙인들이 모여 자는 것을 막기위해 차링크로스역 뒷골목 상가에 설치된 화단.

역시 같은 뒷골목의 한 풍경. 가게 주인과 노숙인의 치열한 머리싸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건물 회랑에서 노숙인들이 30~40명씩 떼지어 잤답니다. 그러자 업주는 회랑에 쇠창살을 둘렀습니다. 쇠창살 앞 약간의 지붕 밑에 또 노숙인들이 진을 쳤더니 업주는 아예 화단을 만들었답니다. 건물 맞은편은 공원인데, 요즘은 공원도 밤에는 문을 닫는답니다. 건물에서도, 공원에서도 쫓겨난 노숙인들이 길에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유서깊은 사보이 호텔 부근의 사보이 채플입니다. 1512년에 헨리 7세가 노숙인들을 위한 병원으로 만들었답니다.

노숙인 문제는 하루이틀이 아니었던 것이죠. 500년 전에 이미 노숙인 병원도 만들었는데, 인류가 진보했다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가혹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노숙인’을 주제로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시 보니, 런던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시화·실업·노숙인 같은 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 동시대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런던에 갈 기회가 있으면 대안관광 삼아 한번 돌아보십시오.

■ 글 최명애
■ 블로그 주소 http://ecotraveller.khan.kr
글쓴이는 경향신문 환경·여행담당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영국 런던에서 생태관광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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