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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16:00:48)
우리는 모두 노숙인이다 [2011.09.05 제876호]
[특집] 고용 없는 성장 시대, ‘비시민’이 된 노숙인… 관리 대상에서 말소와 추방으로 이어지는 도시위생학의 대상이 되다

 

» 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 조처가 시작된 8월22일 오후, 한 노숙인이 쇼핑몰로 이어지는 역사 로비 한쪽에서 잠을 자고 있다. 민간자본 투입에 의해 복합 쇼핑몰로 변모한 공공역사에서 소비능력이 없는 노숙인은 추방돼야 할 불순한 이물질일 뿐이다. 한겨레21 박승화

“막차를 타려고 뛰어가는데/ 지하도 큼직한 기둥들 사이로/ 웅크린 돌덩어리들/ 아니, 인기척을 내는/ 소름 확 끼치는 거대한 짐승들 있다/ 순간 가슴 벌렁벌렁거리게 하는 이 고요/ 카타콤베…”

2008년 발표된 김사이의 시 ‘카타콤베’는 노숙인을 제재로 삼은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물론 노숙인이란 존재 자체가 작품의 주된 관심거리는 아니다. 시인이 문제 삼는 것은 노숙인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이다. 이 시선에 포착된 노숙인은 인간이라기보다 사물(“웅크린 돌덩어리들”)이나 동물(“인기척을 내는 거대한 짐승들”)에 가깝다. 그래서 조우하는 순간 동정과 연민보다는, 혐오(“소름 확 끼치는”)와 두려움(“가슴 벌렁벌렁거리게 하는”)을 자아내는 존재다.

 

퇴거 대상이 된 ‘선한 피해자’

노숙인은 한때 외환위기라는 불가항력적 외압에 의해 사출된 ‘선한 피해자’로 인식되곤 했다. 불과 12~13년 전 일이다. 당시 이들은 공감과 조력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노숙인 정책의 줄기 역시 치료와 복귀에 맞춰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들은 공공의 공간을 무단 점유한 채 불편함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파렴치한 존재, 범죄와 난동, 질병을 가져오는 위험 인자로 간주됐다. 그사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8대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인 2008년 3월27일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청 앞 거리 유세에 나선 전여옥 한나라당 후보는 이미 자신에게 기운 판세에 쐐기를 박겠다는 듯 비장의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KTX의 영등포역 정차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약속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 안팎의 노숙자들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KTX가 백날 오면 뭐하느냐. 영등포역이 전국에서 노숙자 1위 역이 된다면 다 소용없다.”

 

» 소비사회에서 ‘추방’ 대상은 노숙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2009년 12월15일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철거반원들에게 좌판을 빼앗긴 노점상이 도로에 누워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전여옥 노숙자 망언’으로 알려진 이날 발언에 대해 인권단체와 노숙인 지원단체들이 격하게 반발했다. 현장 상황이 녹화된 휴대전화 동영상이 인터넷에 확산되면서 누리꾼들의 비난도 빗발쳤다. 진보신당의 촌철살인 논평이 두고두고 회자됐다. “노숙인은 한나라당이 만든 국가적 재난인 IMF 때 생겨난 사람들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5년 전에는 천막 당사에서 풍찬노숙하던 노숙인들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떠들썩한 반응들 가운데 정작 ‘정리 대상’으로 지목된 노숙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언론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전한 것은 정치인이나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의 발언이었다. 결국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표 차이는 불과 900여 표. 당시 영등포역 주변에 머무르던 노숙인 수(1200명)보다 적었다. 노숙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면 결과가 뒤집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노숙인은 애초부터 ‘목소리가 없는 자들’이자,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셈해지지 않는 ‘잉여의 존재들’이었던 까닭이다.

전 의원의 공약은 영등포역이 아닌 서울역에서 실현됐다. 지난 8월22일 코레일과 서울역은 새벽 시간 동안 노숙인을 역사 바깥으로 퇴거시키는 조처를 단행했다. 서울역은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처”라고 강변했다. “노숙인 문제는 역사 안에서 재워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정부, 지자체 등에서 재활 지원과 쉼터 제공 등을 통해 풀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을 넘기기도 했다. 코레일의 논리에도 수긍할 만한 구석은 있었다. 공공역사가 노숙인 보호시설이 아닌 이상, 기차역의 용도에 걸맞게 이용객의 편익을 증진하려 노력하는 것은 역사 관리자들의 당연한 책무였기 때문이다.

 

소비능력이 시민의 규범이 된 사회

눈여겨볼 대목은 코레일이 노숙자 퇴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의 과감성이었다.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숙인들의 퇴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사실상 ‘기차역사에선 시민의 이용권이 노숙인의 인권보다 앞선다’는 논리에 근거해 있었다. 이 지점에서 노숙인은 시민과 대립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노숙인은 ‘시민이 아닌 존재’(비시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볼 때 노숙인이 ‘비시민’인 이유는 단순하다. 주거가 없으니 주민등록에 등재되지 않고, 납세 같은 시민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들에게 ‘소비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하듯, 고용(노동)이 성장의 함수가 되지 못하는 사회(‘고용 없는 성장’ 사회)에서 사람들은 노동능력보다는 소비능력에 의해 그 쓸모가 가늠된다. 어떤 기술을 갖고 있느냐보다, 소득이 얼마인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판단된다는 얘기다. 바우만은 말한다. “빈곤층이 위반하는 규범은 고용의 규범이 아니라 소비능력의 규범이다.” 이 말에 따르면, 노숙인은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미 많은 공공역사들이 민간자본 투자에 의해 복합 쇼핑몰로 탈바꿈한 상황이다. 소비능력이 없는 노숙인은 더 이상 일없이 역사 구내와 주변을 배회해선 안 된다. 공공의 공간이 사유화됨으로써 그곳을 이용하던 약자들이 축출되는 사례는 과거에도 빈번했다. 집 없는 사람들이 점유하고 살던 국·공유지가 민간에 불하되면서 매입능력이 없는 빈곤층은 강제로 내쫓겨야 했다. 가로가 정비되고 보행로가 대규모 소비공간으로 개조됨에 따라 강제 퇴거를 당하는 노점상들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중반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30년 가까이 인근에서 영업해온 노점상들이 시 외곽으로 집단 소개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비시민’의 추방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원 벤치에는 언제부턴가 높다란 턱이 생겨났다. 노숙인이 드러눕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 가로변 인도의 진·출입로에도 수레의 이동을 차단하는 볼라드가 설치됐다. 보행로를 점유하는 노점상을 겨냥한 조처였다. 심지어 복원된 청계천에는 노숙자와 노점상의 출입을 막는 조례까지 만들어졌다. 일종의 ‘도시위생학’이다.

도시위생학은 지난 8월24일 주민투표 실패로 퇴출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서울을 세계적인 스펙터클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의 구상은 ‘명품 도시’ ‘아름다운 도시’를 위해 ‘더럽고 위험하고 불순한’ 요소를 철저히 도려내겠다는 위생학적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었다. 위생학적 적출 대상은 노숙인·노점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거민·불법체류자·전과자·장기실업자·신용불량자·비행청소년·중증장애인·전문시위꾼 역시 혐오와 불쾌감, 소요와 불안을 야기하기는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는 ‘오세훈식 위생학’이 빚어낸 예고된 재난이었다.

 

근대식 관리에서 중세식 추방으로 회귀

문제는 추방이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식적 추방’으로 이어진다. 폭력을 동반하는 물리적 추방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추방된 자들의 존재를 한층 부각시킴으로써 예기찮게 ‘추방된 자들의 귀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권력은 추방된 자들을 인식의 장벽 바깥으로 몰아내는 데 한층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다. 인식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사라지면 관심에서도 멀어진다.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도덕적 공감도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추방된 자들이 아무리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해도 ‘헛소리’와 ‘소음’으로 취급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방의 확산이 현대국가의 변화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본다. 기실 추방은 근대 이전의 사회가 내부의 이질적 요소를 취급하는 방식이었다. 미셸 푸코가 말하는 ‘나병(한센병) 모델’이 그것인데, 중세시대 광인이나 나병 환자들은 공동체에서 격리되고 추방됐다.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병자와 일탈자들은 ‘치료와 규율’ 대상으로 전환된다. 병원과 교화소, 구빈원, 학교가 추방(유형)지의 역할을 대신했다. 근대 권력의 관심은 추방을 통한 영구적 격리가 아니라, 복귀와 재활을 통해 인구집단의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서동진 계원디자인대 교수(사회학)는 이런 점에서 추방의 확산을 ‘중세로의 회귀’에 비유한다. “(노숙인 퇴거는) 걸인이나 부랑자를 사회화하고 재통합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회) 바깥으로 방출해버리는 것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위험조차 사회화하려 했던 20세기 국가의 시스템(복지국가)이 완전히 붕괴돼버린 현대국가의 무능을 표상한다.”

비인간적인 추방과 방출은 그 대상을 ‘범죄화’함으로써 정당화된다. 알코올중독·절도·강도·폭력·인신매매 같은 범죄 지표들이 그들의 삶에 덧씌워지고, 미디어는 치안기구와 공모해 잔혹하고 선정적인 범죄 장면을 적나라하게 중계함으로써 이른바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확대재생산한다. 그들은 이제 ‘증오 범죄’(묻지마 범죄)와 ‘도시 테러’의 온상이자,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들’로 간주될 따름이다. 더 이상 통합과 복지의 대상일 수 없는 그들은 인권의 차원보다 치안과 행형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사라질 때 싹트는 것은 ‘무결점 사회’를 향한 유혹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잡초를 깡그리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 이것은 아우슈비츠를 만들어낸 전체주의적 열망과 동일하다. 노르웨이에서 빚어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테러가 그런 경우인데, 브레이비크는 ‘조국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들’뿐 아니라 쓰레기의 유입을 방치해온 온정적 좌파를 상대로 무자비한 인간사냥을 벌였다.

 

누구나 ‘쓰레기들’이 될 수 있다

지금 서울역 노숙인들의 강제 퇴거를 규탄하고 저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추방돼야 할 ‘쓰레기들’의 목록에는, 노숙인뿐 아니라 소비사회의 규준과 척도에 미달하는 불행한 개인 누구라도 기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노숙인은 가혹한 경쟁에서 상처받고 뒤처질 위험에 처한 이 시대 모든 사회적 약자를 지시하는 대명사와 다름없다. 우리는 모두 노숙인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기사원문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03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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