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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코레일-서울시의 희망의친구들 시범사업,“우수사례”일 수 없는 이유 (上)


<안형진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코레일이 지난 2012년부터 서울시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노숙인 일자리 제공사업, 이른바 ‘희망의친구들 시범사업’이 점차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레일은 올해 7월 부산역에서 동일한 내용의 일자리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10월에는 대전역과 청량리역으로 사업 대상지를 확대했다.


사실 희망의친구들 시범사업이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간하는 노숙인 정책사업 지침서(‘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에 줄곧 “우수사례”로 소개되어 왔다는 점, 사업성과에 대한 검증 없는 상찬이 여러 언론을 통해 지속 이어져 왔다는 점 등을 상기한다면, 사업 대상지역이 늘고 있는 현재의 추세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과거 서울시가 공언한대로 희망의친구들 시범사업이 “노숙인 정책의 새로운 모델”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정부와 서울시의 말마따나 이 사업을 ‘노숙인 정책의 모델’이자 ‘우수사례’로 간주해도 좋은 것일까. ‘자활의 기적’ 운운하는 어느 언론사의 낯 뜨거운 헤드라인처럼, 해당 사업의 확산을 우리는 곧이곧대로 반겨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의 차폐막으로 출범한 희망의친구들

어떤 정책이나 사업을 평가하고자 할 때, 해당 정책, 사업이 무슨 요인에 의해 왜 시작됐는지 그 맥락을 검토하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작업이다. 특히, 그 요인이라고 하는 것이 현재까지 여전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한데, 희망의친구들 시범사업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현 희망의친구들의 초기 명칭은 ‘노숙인 청소사업단’이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은 아닌 듯한데, 이 사업을 처음 기획한 주체는 서울시가 아닌 코레일이다. 2012년 3월, 코레일은 자사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코레일 보도자료, 2012년 3월 6일자
“서울역 노숙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코레일은 공기업으로서의 나눔 경영을 실천하고자 근로능력과 자활의지가 있는 서울역 노숙인 20명에게 서울역 주변 환경미화 사업 일자리를 6개월간 지원할 예정임. 세부 운영 계획은 서울시 및 서울역 다시서기센터와 협의 중에 있으며, 향후 성과를 분석하여 운영기간 연장 여부와 고객 안내 등 다양한 업무 부여도 검토할 계획임.” 



그런데 2012년 초 당시 코레일은 이른바 ‘공공기관 선진화’를 앞세운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 등으로부터 인력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시행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추가 재원이 소요되는 노숙인 일자리사업을 코레일이 강행했던 까닭은, 전년도(2011년) 여름부터 시작된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때문이었다. 이는 2014년에 생산된 서울시의 공식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해당 문건에는 코레일의 제안으로부터 비롯된 ‘노숙인 청소사업단’의 출범이 “서울역 대합실 내 노숙행위 금지조치”에 따른 것이라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서울시 자활지원과, 코레일 협력사업-노숙인 청소사업단-추진계획. ´14. 2. 6).


코레일과 서울시의 계획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국내 인권단체들은 해당 일자리사업이 “서울역 강제퇴거 조치로 인한 공기업 이미지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업의 지원대상은 “근로능력과 자활의지가 있는 서울역 노숙인 20명”에 한정됐고, 참여 기간은 6개월이었으며 월 급여는 당시 1인가구 최저생계비에 한참 못 미치는 4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배타적이고 한계적인 노숙인 일자리사업을 운영함으로써 코레일이 얻고자 했던 효과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사업 시행 1년 뒤에 나온 코레일의 보도자료 내용을 살펴보자.



코레일 보도자료, 2013년 6월 12일자
“코레일의 노숙인 일자리 제공 사업 ‘결실’”


“코레일은 지난 1년 간 노숙인 일자리 제공사업에 참여했던 노숙인 전원이 탈노숙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더불어, 과거 노숙인들의 침숙 장소로 여겨지던 서울역 맞이방도 불결한 냄새가 없어지고 한결 쾌적해졌다. 술취한 노숙인들의 폭행사건이 상습적으로 벌어지던 모습도 사라졌다.”

※강조는 필자 




위 보도자료의 내용은 코레일의 노숙인 일자리 제공사업이 의도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즉, 코레일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홈리스가 사라진 이유가 (자신들이 강행한)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베푼) ‘노숙인 청소사업단’ 때문임을 강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사정은 정반대라고 해야 옳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의 2년 동안, 코레일은 “뚜렷한 목적 없이 체류하는 자(부랑인, 노숙인 등)에 대한 계도 및 퇴거”를 핵심 과업으로 맡는 용역경비원을 새로이 운용하기 위해 4억 8천만원이라는 비용을 지출했다. 반면, 같은 기간 코레일이 노숙인 청소사업단에 들인 비용은 1억 8천만원에 불과하다. 굳이 이런 비용추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강제퇴거조치가 실제화된 상황에서 서울역 대합실 내 홈리스가 사라진 이유를 “20명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6개월씩 두 차례 시행한 일자리사업에서 찾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언론은 완벽히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노숙인 청소사업단은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를 단행한 코레일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이 사업은 (그간 코레일을 그토록 괴롭혔던) ‘공공기관 선진화’의 우수사례로 선정됐고, 이후 강제퇴거 운운하는 기사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 제한적인 일자리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국면 전환과 함께 이미지메이킹까지 일궈낸 코레일이었던 셈이다.


# 64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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