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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적대적 건축,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는 비인간적 건축양식


<김인손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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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밀집지역에 설치된  자전거 거치대(왼쪽 사진)과 철심(오른쪽 사진) <사진 출처=가디언 123일자>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모두 알다시피 ‘건축’이라는 말은 “건물을 짓는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짓는 일이 누군가에게 적대적이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건물이 누구에게 적대적이라는 말일까요?


사람을 내쫓는 건축

‘적대적 건축’ 혹은 ‘적대적 디자인’은 사람들이 공공시설이나 공간을 장시간 이용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건축과 디자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편하게 누울 수 없도록 바닥에 철심을 박거나 벤치 한가운데에 팔걸이를 만드는 등의 디자인이 모두 이런 적대적 건축에 속합니다. 적대적 건축은 1990년대 도시디자인과 공공공간 관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요. 원유 송유관과 같은 공공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디자인이 발전한 것이죠.

적대적 건축의 가장 주요한 피해자는 다름 아닌 거리 홈리스입니다. 공공시설이나 공간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는 사람은 대부분이 주거 불안정 상태에 처한 홈리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실제로 2014년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유통업체 테스코는 홈리스들이 눕지 못하게 매장 주변 바닥에 철심을 박았다고 합니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홈리스들의 거주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홈리스 밀집 지역에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했고요. 도시 공간 자체를 빈민에게 적대적인 방식으로 건축함으로써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손쉽게’ 밀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시를 허락하라!

이런 적대적 건축에 대항하는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 본머스(Bournemouth) 시에서는 하루 동안 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팔걸이가 달린 벤치 사진에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고, 19,5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적대적 건축 반대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더 적극적인 몇몇 시민들은 벤치에 설치한 팔걸이를 직접 떼어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적대적 건축 양식에 대한 반대는 주거 불안정과 홈리스 문제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로도 이어졌는데요. 임대주택과 주거 지원, 거리 홈리스에 대한 정신건강 관련 상담 등에 관한 민원도 한 달 동안 1000건이 넘게 제기되었다고 해요. 결국 본머스 시는 엄청난 반대여론에 밀려 팔걸이가 달린 벤치 등 적대적 건축물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적대적 건축

영국의 사례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반발 없이 여전히 이런 비인간적 건축양식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적대적 건축은 영국이나 미국같이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주의 깊게 살펴보면 거리 홈리스들이 모여드는 서울역에도 적대적 건축양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벤치 한가운데에 흉물스러운 팔걸이를 달아놓고 역사 구석구석마다 펜스를 쳐놓았죠. 기둥 밑에는 쇠창살을 쳐놓아 기둥에 기대어 앉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잠잘 곳이 없어 거리에서 한뎃잠을 잘 수밖에 없는 홈리스들을 이제는 공공공간에서마저 내쫓겠다는 심산인 겁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날이 갈수록 도시 공간은 점점 적대적으로 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만든 공간이 사람을 내쫓는다니,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입니까? 가난한 것이 죄도 아닌데 말이에요. 이런 비인간적인 건축물들, 하루 빨리 모조리 폐기해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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