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기고]

 

누구에게나 집다운 집이 필요합니다

“나 다울 수 있는 집”을 찾는 청소년들의 장 ‘엑시트’

 

 

 <윤경 / 움직이는청소년센터 엑시트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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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날부터 탈가정 청소년들은 '나를 위한 집이 아니'라는 생각과 '이제 어디로 가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지낸다. <사진출처=강혜민>

 

 

“나 오늘 잘 곳이 없어”

“아빠가 옛날부터 때렸는데 이제 정말 못 참아서 나왔어”

“엄마가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래. 그래서 나왔어”

‘움직이는청소년센터 엑시트’(이하 엑시트)는 거리에서 청소년을 만나는 조직 입니다. 청소년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함께 안전한 해결 방법을 찾는 ‘엑시트’는 ‘홈리스행동’과 일정 부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엑시트’가 거리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주거입니다.

 

집이었던 곳에서 살 수 없어 나왔지만, ‘엑시트’가 만난 청소년 중에 집이 필요 없는 이는 없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친구 집을 가지만, 갈 곳이 없으면 공중화장실이나 인적이 드문 건물 계단에서 자기도 합니다. 거리 생활에 익숙해지면 피씨방에서 몰래 자거나,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몇몇이 돈을 모아 찜질방이나 모텔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비용 문제로 오래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시설에 있으면 내가 자꾸 화를 내. 나 때리고, 무시하니까. 그래서 나왔어”

“내가 레즈비언인 거 선생님이 알고 나가라고 그러더라구”

노숙인 쉼터와 유사한 청소년 쉼터도 있지만 핸드폰 반납, 외출 금지, 통금시간 등 청소년이 정할 수 없는 규칙들 때문에 꺼리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아동 보육 시설과 청소년시설은 사실상 격리 상태이기도 합니다.

 

몇몇이 돈을 모아 무보증에 월세 40~60만원, 5평 남짓한 방을 구하기도 하지만 오래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사는 곳이 불안정해지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밀려난 청소년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많지 않아 생계도 불안정합니다. 겨우 구할 수 있는 일은 물류 상하차, 배달 대행 정도인데 장시간 일해야 하고 강도가 높아서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핸드폰 임시

 

개통, 명의도용 사기에 연루되고, 순식간에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빚이 생깁니다. 불안정에 불안정이 더해지고, 무력감에 압도되어 무엇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삶의 안정에는 집이 필요합니다"

가족이 있는 곳도, 시설도 집이 될 수 없는 이들에게 ‘살만한 집, 집다운 집’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사회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청소년, 현장기관, 연구자가 모여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바꿔야 할 것은 산더미지만 삶의 안정을 위해서는 집이 먼저라는 공감 때문이었지요. 집다운 집이 있다고 반드시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집다운 집이 없으면 삶은 반드시 불안정해지니까요.

 

“본인이 집이 싫어 나왔는데 왜 국가가 세금을 들여 집을 줘야 하나?”, “어린 애들에게 집을 주면 범죄자소굴이 되지 않겠나?”라는 반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청소년이 당하는 폭력을 ‘가족 간 일’이라며 방임한 것은 누구일까요? 패배감과 무력감만 느끼게 하는 정규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이 밀려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시설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불안정 일자리만 선택하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이 문제들의 책임이 아동·청소년에게 있지 않습니다. 아동·청소년이 모욕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책임은 하나의 개인이 아닌 사회에 있습니다.

 

활동한 지 2년이 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이하 청주넷)는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원칙’을 만들고, 청소년 당사자의 주거 경험과 주거권 요구를 담아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정책요구안을 냈습니다. 주거권은 물리적 공간인 집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이 살 수 있는 집 100채를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폭력적인 환경에서, 존중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돌봄도 받지 못한 이들은 집이 있어도 혼자 살아가길 두려워하기도 하고, 삶을 꾸려가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집에 더해서 믿을 수 있는 곁이 필요함을 현장 곳곳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곁은 개인의 선의가 아닌 사회적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청주넷’은 집과 집에서 살아갈 청소년의 삶 유지를 위한 주거서비스 지원을 함께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자리가 있는 곳, 돌아갈 때 무섭지 않은 곳, 내 물건이 있는 곳, 숨을 수 있는 곳,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곳,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곳, 내일을 살아갈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곳, 쫓겨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 삶의 시작점이 되는 그곳. 그런 집다운 집이 청소년에게만 필요한 건 물론 아니죠. 홈리스도, 장애인도, 노인도 누구나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궁리하고 도모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한 청소년 주거권 활동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더 많이 말 걸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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