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79
2020.09.28 (21:45:31)



반복되는 홈리스 의료공백
서울시내 병원급 이상 노숙인 진료시설 9곳 중 5곳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아파도 갈 병원이 없다



<응팡, 이채윤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지난 8월 말,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김모씨(50대)는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하자 응급실을 가기 위해 119구급차를 탔다. 병원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그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고, 그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야 했다. 9월 1일, 적십자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홈리스를 포함해 입원해있던 환자 전원이 퇴원 조치됐다. ‘노숙인 진료시설’로 이용되던 국ㆍ공립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홈리스의 건강권이 침해돼 문제가 되고 있다.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만 이용하라는 홈리스 의료체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진료시설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홈리스는 그럴 수 없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 대상자는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의료급여기관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 시설, 주거 적절성이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등’은 <노숙인 등 복지법>, <의료급여법>에 따라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제도를 이용해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다. ‘노숙인 등’이라고 해서 모두 의료급여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추가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 1)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노숙인 자활시설(기존 노숙인쉼터) 입소자 중, 2) 노숙인 해당 기간이 지속적으로 3개월 이상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이면서, 3)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된 사람만이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조건대로라면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홈리스, 신규 홈리스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코로나19 시기, 홈리스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

 9월 16일 현재, 서울 지역에서 1차 의료기관인 보건소를 제외하고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곳은 국립정신건강센터,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적십자병원, 동부병원, 보라매병원, 서북병원, 서울의료원, 서울의료원강남분원, 은평병원으로 총 9곳이다. 이중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적십자병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과 서북병원 등 총 5개 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상태다. 각 병원에 전화해 외래 진료, 입원, 응급실 이용이 가능한지 확인한 결과, 현재 홈리스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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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홈리스가 갈 수 있는 응급실은 동부병원뿐이다. 그마저도 동부병원 응급실이 가득 차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코로나19 시기, 홈리스라는 이유로 아파서 응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김모씨처럼 아무런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퇴원 처리된 홈리스, 아프지만 외래, 입원 치료를 받을 병원이 없어 아픔을 그저 참고 있는 홈리스도 있다.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데 어디로 전원하나?

보건소를 제외한 서울시 내 노숙인 진료시설 9곳 중 5곳이 이미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상황에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 해야 하는 홈리스가 접근할 수 있는 의료시설은 극히 제한적이다. 전원할 병원을 찾지 못하면 남은 선택지는 퇴원뿐이다. 홈리스행동에서 실시한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의료공백 피해사례 설문조사>에서도 입원해있던 곳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퇴원했다고 응답한 이가 있었다. 그는 퇴원 시에 다른 의료기관을 소개받았으나 전원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후속 치료를 받지 못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책 없이 병원에서 쫓겨난 것이다. 적절한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주거가 없는 홈리스에게 퇴원 조치는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처사다. 전원이 어려운 경우, 임시방편으로 병원 사회사업팀에서 홈리스를 생활시설에 연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설은 적절한 주거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할뿐더러, 병원 치료가 필요한 홈리스가 겪는 의료공백이 그대로라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적이다.


반복되는 의료공백

거리나 시설에 거주하는 홈리스 역시 의료공백을 경험하고 있다. 홈리스행동과의 인터뷰에서 한 노숙인시설 관계자는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공백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홈리스 당사자가 고열이나 출혈로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당시에 병원 이송을 위해 119에 연락했지만 “코로나가 아닌 이상 병으로 취급받지 않아서” 노숙인 진료시설 응급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심장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는 홈리스 당사자 김모씨(60대)는 정기검진 차 지난 5월과 6월에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으나 진료를 받지 못했다. 항암 치료를 받던 조모씨(60대) 역시 지난 2월 입원이 거부되었으나 별다른 보호조치나 안내조치를 받지 못해 직접 다른 의료기관을 알아봐야 했다.

국․공립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지금,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의료에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보호자가 없거나 정보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새로운 병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병을 방치하게 된다. 치료비 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특히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는 지정병원 제도로 인해 다른 병원을 알아볼 여지도 없이 의료공백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같은 감염병인데? 대책 없이 남겨진 홈리스 결핵환자

홈리스의 삶은 더 많은 아픔을 수반한다. 결핵은 홈리스가 취약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대한결핵협회에 따르면 거리홈리스의 결핵 발병률은 일반 인구 집단 대비 약 2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특히 결핵은 치사율이 5.9%로, 현재까지 공개된 코로나19 치사율 2.1%에 비해 약 3배가량 높아 치료의 필요성이 매우 큰 감염병이다. 그러나 홈리스 결핵환자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현재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원시에 머물던 거리홈리스 김모씨는 최근 다른 질병을 이유로 실려 간 사립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결핵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김모씨가 입원한 병원에선 그를 결핵 전문 국·공립병원인 서울특별시서북병원과 국립목포병원에 연계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 서북병원은 해당 병원을 이용한 기록이 있는 결핵환자만을 받고 있어 신규환자는 이용할 수 없다. 국립목포병원도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컨디션이 아니다”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뱉을 뿐이었다.


‘노숙인 진료지설 지정제도’ 폐지, 공공의료기관 확대해야

2015년 메르스 확산 시기,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거점병원이 되면서 홈리스 환자들은 적절한 전원 조치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홈리스행동은 “제2차 메르스가 오면 또다시 홈리스 환자와 취약계층 환자들은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병원에서 쫓겨날 것”이라며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또다시 홈리스는 전염병 상황에서 의료공백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홈리스가 겪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지정된 의료기관만을 이용하도록 규정하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기해야 한다. 현재 홈리스가 겪는 의료공백은 코로나19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노숙인 진료시설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홈리스는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홈리스의 경우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질환이 있거나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지정병원 중 종합병원의 개수가 부족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사실상 의료 접근을 제한할 뿐인 지정제도를 폐지하고 적정의료를 제공하는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해야 한다. 홈리스도 아프고, 아픈데도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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