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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 나의 존재만으로 사회구성원임을 인정받기 위한 싸움



<정성철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2014년 서울역에서 만난 K씨는 97년 외환위기 끝자락에 해고당했다. 백방으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구할 수 없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함께 살던 배우자와 어린 자녀,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 술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책과 술이 상황을 해결해줄 리 없었다. 배우자는 그에게 이혼을 요청했고, 그는 결국 서울역으로 나오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고 지게차 등의 중장비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 인력소에서 대마찌 맞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일하던 중 쓰러졌다. 밥을 멀리하며 마신 술과 강도 높은 노동, 거리생활이 건강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심각한 수준의 간경화. 그러나 그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자는 제안을 몇 번이고 거절했다. 이유는 단 하나, ‘가족이 있어서’. 주위에서 가족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기 때문이다.


▲  2019년 12월 19일,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청와대 앞 농성을 마무리하며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시효만료 정상가족 중심복지' 적힌 액자 피켓 안에 소위 정상가족이라 여겨지는 가족 동상의 모습을 담았다.<사진출처=비마이너>


빈곤의 책임을 가난한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하는 ‘부양의무자기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급을 신청하는 사람의 소득과 재산이 선정기준 이하’여야 하는 것 외에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바로 생계와 주거를 달리하고 있는 가족의 소득과 재산이 선정기준 이하여야 한다. 이를 ‘부양의무자기준’이라고 한다. 부양의무자의 범위에는 부·모·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까지 포함된다. 여기서 실제 부양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수급을 신청하는 사람의 소득과 재산이 전무 하더라도 연락하지 않는 가족의 소득과 재산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는,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러한 부양의무자기준은 90만 명에 달하는 수급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방치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가족이 있어도 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K씨에게 전달했지만 그는 끝내 수급신청을 하지 않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때문에 K씨가 수급 신청을 하게 되면 부양의무자로 되어있는 가족이 K씨의 상황과 위치를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건강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지만,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싫어 수급 신청을 포기한 K씨는 결국 시설로 떠났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파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광화문역사 지하도에서 2012년 8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842일 동안 농성을 진행했다. 그 결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 8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하여 2020년 발표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계획을 수립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기를 약속했다.


5년의 농성, 대통령의 약속, 그로부터 3년의 기다림, 약속의 시기가 도래했다. 2020년 8월 10일,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이 담긴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생계급여에서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지만, 의료급여에서는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명백한 공약 파기였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위한 투쟁이 필요한 이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다. 그리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플 때 가족에게 찾아가라고 엄포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싸움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고 생계급여에서 2022년까지 폐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K씨가 다시 수급 신청을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생계급여로 받는 돈을 의료비로 사용해야 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의료급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감기나 물리치료, 염증 치료와 같은 단순치료 비용이 부담돼 아픔을 참으며 병원 이용을 포기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단순히 선정기준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족중심 복지제도와의 결별, 지난 20년간 가족에게 빈곤과 돌봄의 책임을 떠넘기며 만들어낸 차별과 폭력을 끝장내는 것, 빈곤문제의 사회적 해결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족이 아니라 나의 존재만으로 사회구성원임을 인정받고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위한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사이가 안 좋은 가족 때문에 수급 못 타 먹게 하는 거 없애버려야”


<반짝이/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편집자 주] 지난 7월 23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계획을 담을 것을 촉구하며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의 취지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반짝이씨는 가족에게 빈곤의 책임을 떠넘기는 부양의무자기준의 문제점을 짚으며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향한 목소리를 높였다.


안녕하세요.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반짝이입니다. 저는요, 수급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건물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신랑이랑 만날 때부터 나랑 사이가 안 좋았어요. 결혼도 하지 말라고 했고 결혼하고 나서 한 번만 찾아오고 말았어요. 서운해요. 결혼하고 지하방에서 살 때 보일러도 고장이 나고 찬물만 나왔어요. 그런데 엄마가 돈도 안 보내줘서 싫었어요. 그래서 수급 신청해서 돈 받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건물 있어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도 방세 주고 해야 하니까 돈 벌려고 공공근로를 오래 했어요. 그런데 공공근로는 하다가 또 끊겨요. 매번 다시 신청해야 해요. 신청해놓으면 될지 안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일을 오랫동안 해서 지겨워요. 걸레도 손으로 꽉 짜야 하니까 손목도 아파요. 그런데 전기 값도 줘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계속 일을 해야 해요.


돈을 안 벌면 나는 굶어 죽어요. 아무것도 안 돼요. 돈을 벌어야 해요. 일을 안 시켜줄 때도 돈이 필요한데 수급은 안 된다고 해요. 엄마가 있어 안 된다고 하는데 사이가 안 좋은 가족 때문에 수급 못 타 먹게 하는 거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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