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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19:21:30)

[담벼락]은 쪽방 주민들의 글이나 그림,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장마에 갇히다



<선동수 /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간사>


“끄떡없다”, “괜찮다”, “비와서 시원하다”, “안 나가면 되는데 뭐 힘든 게 있어?”, “계속 누워있으니 편하다”...... 최근 장마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동자동 주민들에게 여쭈었을 때 나온 답들이다. 이런 경우만 있었거나 대다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런 답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고통스러운 비(苦雨)’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장마는 쪽방 주민들에게 길고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엄밀히 말하면 장마 자체가 주었다기보다는 장마를 기후변화에 의한 역대급 최장기 국지성 집중호우가 되도록 만든 한편, 장마 대책을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인간과 당국자들이 주민들의 고통을 키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장마에 갇히게 된 주민들의 어려움과 피해가 결코 적지 않기에 여기에 그것을 짧게나마 적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가 계속 오니까 도시락배달 봉사하는 것도 힘들고, 비가 와갖고 바깥에 못나가는 것 때문에 마음도 그렇고.”
“건강 문제 때문에 산책을 계속 해줘야 하는데 밖에 못나가니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도 높아졌어요.”
“방에만 있으니 옛 생각이 나서 안마시던 술을 마셨네요.”
“다행히 집은 괜찮은데 허리, 다리가 더 쑤셔서 못살겠네.”
“밖엘 못나가서 그런가, 우울증이 심해졌어요. 나도 모르게 빙초산을 입 안에 넣었다가 큰일 날 뻔 했다니까. 왜 그랬나 몰라요.”
“고관절 수술해서 목발 짚고 다니는데 비가 계속 오니 병원 가는 게 큰일이네요.”
“빗길에 자전거 타고가다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쳐 병원 다녀왔어요.”
“비 맞은 빨래는 다시 하면 되는데, 시계가 벽의 물 먹고 작동이 안 돼. 맛이 가버렸네.”
“옥상에 심어 기르는 채소가 이번 장마에 싹 다 죽었어요.”
“옷이고 뭐고 곰팡이에 냄새 때문에 아이고~ 죽겠어요. 빨리 전세임대 가야지.”
“방문에 물이 새서 주인한테 얘기했더니 건물옥상에 물건 치우면 안 새니까 나더러 치우라는 거예요.”

“화장실에 금이 갔어요.” 
“부엌에 물이 새서 건물주에게 말해놨어요.”
“보일러실 쪽에 물 새서 주인에게 얘기는 했는데 언제 올지 몰라요.”
“천정에 물이 차서, 벽지 떼어놓았어요. 주인에게 얘기 해야지.”
“벽 사방에 습기 천지라 선풍기 틀어 놓았는데 소용없어요.”
“습기 같은 건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지하니까 당연히 가득하죠.”
“청소 일 하는데 민원도 많이 들어오고, 잠시 비 그쳤을 때 한꺼번에 치워야 하니 힘이 많이 드네요.”
“세차 일 하는데 이번 장마에 일을 많이 못했고 8월엔 하루도 못했어요. 기본 급여는 나오는데 이 일이 잘되어야 내년에도 할 수 있는데 이러다가 아예 일자리 자체가 없어질까 그게 걱정입니다.”


이상했던 장마가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이 비정상의 장마가 올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정상이 되어 계속 이어질 거란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쪽방 등 비주택에 대한 제대로 된 장마 대책을 제대로 속히 마련해야 할 이유다. 당장은 이번 장마로 주민들이 어떤 어려움과 피해를 겪었고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사부터 해야겠지만, 폭우와 장마 대책은 반드시 임대주택 이주나 공공주도 재개발 등 주거 대책과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마에 갇힌 쪽방 주민들은 장마가 끝나도 갇혀 지냄과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장마와 관련해 주민들을 만나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마에 안부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걱정해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작, 더 많은 주민들을 만나지 못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이웃, 활동가, 공무원과 정치인들 모두 이런 안부와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의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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