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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1829
2020.06.01 (13:38:21)

[특집 Ⅱ]



홈리스, 노동권을 말하다
거리에서 살면서 일하는 3인의 홈리스 인터뷰



<홍수경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6면-김땡땡] (2).jpg



거리홈리스를 향한 오래된 인식 중 하나는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인식은 홈리스 상태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이나 나태함에서 찾으며, “뭐라도 해서 먹고살라”는 식의 비난으로 쉽게 이어진다. 홈리스가 일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 개인의 탓이 될 때, 거리에서, 시설에서, 쪽방에서, 그 외 비적정 거처에서 머무는 한명 한명의 홈리스의 삶은 지워진다. 홈리스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 노동절을 맞아 거리에서 살며 일하는 세 명의 홈리스를 만났다.


지난 20일, 용산역에서 김씨(가명)와 이씨(가명)를 만났다. 이들은 올해 초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 중 특별자활근로에 참여했다. 노숙인시설에서 하루에 5시간, 월 15일 동안 청소를 하고 월 70만원을 받았다. 김씨는 한 달 정도 참여하다 몸이 아파 그만두었고 이씨는 3개월간 참여했지만 현재는 일을 하지 못한다.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을 계속하려면 만 65세 이상이거나, 진단서를 끊어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임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 일자리 수ㆍ안정성ㆍ임금 모두 ‘미흡’

김씨와 이씨가 참여하고 있는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은 “홈리스에게 일자리를 연계·지원하여 자활 및 자립을 돕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2020년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 추진 목표 일자리를 2천 750개로 잡았다. 사업 대상자는 시설 입소 노숙인 및 쪽방 주민이다. 2018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숙인은 3천 478명, 쪽방 주민은 3천 183명이다. 그에 비해 일자리 개수는 크게 부족하다. 김씨와 이씨는 입을 모아 일자리의 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자리 개수는 정해져 있는데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기회가 안 오는 거죠”라며 신청자가 많으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캡처q.JPG


좀 더 세부적으로 살피면 목표 일자리 2,750개 중 공공 일자리는 790개로 특별자활근로(반일제)가 650개, 일자리갖기(전일제)가 140개이다. 전년도에 비해 반일제(월 64~81만원)보다 급여가 높은 전일제(월 185만원)의 수가 크게 줄었다(230개→140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급여가 높은 일자리 개수를 줄이고 불안정하고 급여가 낮은 일자리의 수를 늘린 것이다. 김씨는 특별자활근로로 받는 70만원으로는 거리 노숙을 벗어날 수 없다며 “창문이 있는 고시원에 살기는 어렵고 쪽방에는 살 수 있다”라고 했다.



일자리의 단계적 전환? 취업과 실업의 반복

서울시 일자리사업의 추진 방향은 “일자리의 단계적 전환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민간일자리로 연계 확대”이다. 근로능력에 따라 일자리를 공동작업장 ⇒ 특별자활근로 ⇒ 일자리 갖기 ⇒ 민간일자리 순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캡처w.JPG


이러한 서울시의 사업 방향에 대해 이씨는 “취업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1년에 최소 3개월에서 11개월까지 참여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 사업이 끝나면 다시 실직 상태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홈리스는‘자활’을 위한 일자리 지원사업에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일자리 추진 목표치의 절반 이상(1,530개)을 차지하고 고용 기간의 제약이 없는 민간일자리는 어떨까.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민간일자리 고용 형태는 일용직(44%), 1년 미만 단기 근로(67%)로 일자리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업종별 취업 현황을 보면, 건설 일용(43.9%) 업종 비율이 청소·식당 보조(16.3%), 운전·배송·경비·시설관리(15.9%) 등 다른 업종보다 높다. 이러한 민간일자리에 몸이 아픈 홈리스나 여성 홈리스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오랜 거리생활로 몸이 아파 특별자활근로를 중단한 김씨는 서울시 일자리사업을 통한 자활은 환상이라고 했다. 그는 “거리노숙을 하며 몸이 안 좋아지는데 어떻게 매일 일을 할 수 있나”며 “열악한 주거와 건강을 함께 개선하진 않고선 어렵다”고 했다. 홈리스는 주거, 건강, 학력, 신용 등에 있어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 그는 서울시가 몇 개월짜리 일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해서 홈리스 생활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일자리가 몇 개월 주어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홈리스가 기대고 일어설 수 있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공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하고, 홈리스 상태를 고려한 주거, 의료, 교육 등의 공적 지원을 수반해야 한다. 부모님의 묘지가 있는 고향 땅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김씨는 “여기선 희망을 품고 살 수가 없어요. 무(無)망, 희망 자체가 없어요”라 여러 번 말했다. 일이 아니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그에게 “노숙인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일이 너무나 절실하다고 했다. 홈리스가 일하지 않거나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은 홈리스가 일할 수 있게끔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거리에 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거리홈리스의 노동이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사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18일, 서울역에서 서울시 일자리사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리홈리스 박씨(가명)를 만났다. 박씨는 10년째 매일 새벽 하루 2시간씩 주차장 청소를 하고 한 달에 3만원을 받는다. 그는 노숙인 일자리사업을 알고 있지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자활은 싫어서,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자활 일자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박씨의 삶의 낙은 주차장에서 청소하고 서울역으로 돌아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입간판에 글을 쓰는 일이다. 글을 쓰고 남은 시간에는 생활공간인 광장 청소를 한다. 박씨는 “하고 싶은 일은 청소하고 이거 글 쓰는 거. 이게 하고 싶은 거예요. 하고 싶은 걸 지금 하고 있어요”라 했다. 박씨는 꾸준히 광장을 청소하고 글을 쓰며 주변을 돌본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윤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홈리스가 생존을 위해 교회에서 주는 구제금을 받으러 다니는 짤짤이나 폐지 수집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이 차지할 몫(이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이나 생존 자체가 목적인 활동들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문구로 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에게 외치는 저항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으로 인정되는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근거로 쉽게 이용되고 있다. 홈리스 상태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 혹은 나태함에서 찾는 것은 일하지 않는 자에게 먹을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홈리스가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한다고 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권이 박탈되어선 안 된다. 이윤을 낳는 노동 바깥으로의 권리 확장이 필요하다.



5월 1일 노동절, 홈리스 당사자 요지씨의 발언


[편집자 주] 지난 5월 1일 노동절, 서울고용노동청본청 앞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요지’씨는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며 홈리스 노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  노동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는 요지씨의 모습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저는 20대 후반 노숙인시설에서 자활을 했습니다. 한 달에 1주일만 일할 수 있었고, 한 달 받는 돈은 4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쪽방 월세가 약 15만원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너무 적은 액수였습니다. 그 일도 6개월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한데 기간도 임금 수준도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자활은 돈을 주기 위해 일정 시간 일을 시키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숙인은 왜 일을 안 하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학력이 낮고 건강이 좋지 않고 신용 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어떤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습니다. 일자리에 참여해도 기간이 너무 짧고 임금이 적습니다. 홈리스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거지원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자리, 과거의 노동 경험과 연결될 수 있는 일자리, 기간이 제한되지 않는 일자리,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일자리를 요구합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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