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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5:22:56)

[기고]



홈리스에게만 닫힌 ‘개방 화장실’



<최건희 /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


▲  종로타워 지하 식당가에 위치한 ‘개방’ 화장실. 이곳은 과연 모두에게 열린 화장실일까? 어쩌면 저 화장실에 출입하기 위해 복장을 가다듬고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할 날이 머잖아 올지도 모른다. <사진출처=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지난 3월 26일, 종로타워 경비팀 직원이 지하 1층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던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의 화장실 출입을 제지한 일이 있었다. 왜 사용을 못하게 하느냐고 항의하자 직원은 ‘노숙인’인 줄 알고 화장실 사용을 제지했다고 말했다. 옷차림과 행색만으로 ‘노숙인’이라 판단해 화장실 앞까지 쫓아가 사용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개방 화장실이었다. 때문에 나는 해당 직원에게 “나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일반인’은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주거지가 있어야만 화장실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주민등록증이라도 제시해야 하냐고 따졌다. 그렇지만 그는 홈리스가 종로타워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라는 회사의 방침이 내려왔으며 시민들의 민원도 들어오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소위 ‘노숙인’과 ‘일반인’이라는 이분법은, 노숙현장에서 늘 잔인하고 비참한 관례를 만든다. 경비팀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책임소재를 돌리면서도, 한편으로 거리홈리스를 향한 혐오를 (자신과 같은) ‘일반인’으로 식별된 나에게 진심으로 호소했다. 그렇다면 ‘노숙인’이란 이유로 장소 이용을 제지하는 것에 대한 홈리스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홈리스만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별하는 것은 문제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다수 당사자분들의 반응은 달랐다. 자신들 때문에 괜히 실랑이가 벌어져 미안하다는 분, 거리홈리스의 공공화장실 사용을 막는 법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분, 심지어는 화장실을 더럽히거나 사고를 많이 치기에 화장실 사용을 금지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분도 계셨다. 이미 많은 홈리스 분들에게 종로타워의 ‘개방 화장실’은 “우리는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자, 들어가려 하는 순간 권리가 짓밟히는 차별의 장소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지난 2017년 홈리스추모제 인권팀이 발표했던 <거리홈리스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리홈리스의 대다수는 공공장소에서 민간경비원에게 퇴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차별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 그 결과 자기검열이 내재화된 것. 아마도 당사자 분들의 화장실 이용에 대한 생각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긴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이곳 종로타워에 종로서적이 들어서게 됐을 때, 당시 종로구청장이었던 김영종은 종로서적이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 주도로 추억의 장소인 종로서적을 복원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종각역 하부 빈 공간을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곳은 사람들을 구별하고, ‘노숙인’으로 식별된 사람들을 골라서 내모는 장소가 됐다. 이러한 차별에, 이러한 차별을 만드는 구조에 우리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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