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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30 (13:02:31)


‘한 평’ 방 사람들의 ‘두 평’ 농사


<박승민 / 동자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우리에게도 농사지을 땅이 생겼다. 그래 봐야 두 평 남짓 작은 땅이지만 그 조그만 텃밭에서 생명을 일구는 즐거움이 생긴 것이다. 우리 동자동 쪽방주민들이 올 한해 농사짓게 된 텃밭은 용산가족공원에 안에 있다. 3월 중순 처음 텃밭을 찾아가던 날 공원은 꽃을 피우며 봄이 온 것을 알리고 있었다. 탁 트인 공원의 시원함과 화려한 벚꽃들을 보는 순간 주민들은 나오기를 잘했다고 하시며 즐거워했다. 비좁은 쪽방을 벗어난 것이 좋았고 여기에 코로나로 답답했던 요즘이었으니 그 즐거움이 배가 된 것 같다. 우리가 받게 된 땅은 두 평 남짓한 작은 밭으로 면적에 비해 많은 일손들이 갔으니 일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순간 땅이 갈아엎어지고, 순간 물이 뿌려지고, 순간 씨앗이 뿌려지니 작은 땅이 아쉽기만 했다. 올 해 농사 잘 지어 내년에는 두고랑 받아보자며 그 마음을 달랬다.


텃밭을 분양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는 쪽방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쏟을 일이 필요했다. 쪽방촌의 많은 주민들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건강이 좋지 못해 일을 할 수 없으니 수급을 받게 된 것은 당연하겠지만 아픈 몸으로 수급비를 쪼개고 또 쪼개 쓰며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변화 없는 매일을, 그것도 쪽방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이라는 생각에까지 빠지게도 한다. 오십 만원이 조금 넘는 생계비는 끼니를 해결하고 살기에도 빠듯해 좀 더 좋아 질 수 있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만나자며 약속 잡기를 주저해야 하고, 먼 곳으로의 여행은 계획조차 할 수 없는 생활이고 삶이다. 무엇을 하기에 터무니없는 생계비와 여기에 열악한 주거 환경은 우울하기만하다. 그렇다고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허드레 일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조금이라도 수입이 생기면 수급자격에 불이익이 올 수 있고 무엇보다 의료급여가 변경되어 병원진료를 받는 일에 영향을 미치면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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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싶지만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분명 쪽방은 오갈 곳 없는 우리에게는 소중한 공간이고 기초생계비는 삶을 유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지만 그 작은 공간은 머물수록 우울함을 키우기 십상이고, 아픈 몸은 희망을 품을 수 없는 똑같은 매일을 살아야 하는 굴레를 씌운다. 주민들에게는 이 우울한 현실을 벗어나야 하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농사야 말로 쉬지 않고 관심이 필요한 일이니 텃밭 농사는 우리에게 딱 필요한 것 중 하나였다. 마음은 평야인데 현실은 똘랑 두 평 정도 되는 면적. 열무, 상추, 치커리와 같은 작물의 씨앗을 뿌려 놓으니 우리 밭은 싹 나오기까지 변화를 느낄 수 없는데 모종을 심은 옆 밭은 벌써부터 풍년인 듯하다. 씨앗을 키우는 보람도 있지만 사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즐거움 또한 무시 못 하는 것이리라.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끄트머리 조금 남겨둔 자리에 상추, 비트 모종 조금과 밭지기가 좋아하시는 토종민들레 모종이 심어졌고, 청갓 모종은 밭의 울타리가 되어 감싸주고 있다. 농부들이 그렇듯 참으로 알뜰한 쓰임이다.


처음 뿌렸던 씨앗들의 싹이 올라오고 있다. 하나씩 잘 심는다고 했지만 하나씩 잘 심어지는 씨앗이던가. 무리지어 나오는 싹들은 귀엽고, 잘 옯겨 심어 보다 많은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기저기 아픈 곳 투성이인 밭지기는 이틀에 한 번꼴로 물을 주러 밭에 가신다. 모종들이 타버릴까, 새싹이 타버릴까 아픔도 잊게 하는 농사인가 보다. 이모님들은 지천에 널려 있는 쑥과 나물을 캘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지만(나물에 대한 포기는 쉽지 않으실 듯... ^^;) 호수까지 있는 멋진 공원을 산책하는 상쾌함에 기분 좋아 보이신다. 다음에는 우리도 공원에 소풍 나온 가족들처럼 돗자리 깔자고... 도시락에 담겨 질 메뉴가 무엇이 될는지 모르나 분명 꿀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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