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9
2019.08.04 (22:11:13)

<요세바통신>


산야의 공동취사를 소개합니다


<디디 / 산야 쟁의단 활동가, 연구자>


다카다시(급식제공) 아닌 ‘공동취사’
안녕하세요. 디디입니다. 어쩌다보니 10년 정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는데요. 한국의 서울, 캐나다의 밴쿠버나 영국의 런던. 즉 도시라면 어디에나 홈리스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단체도 적지 않죠. 공원이나 큰 역의 주변처럼 홈리스가 많은 곳에선 자원활동가들이 밥을 나눠주고, 밥이 필요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산야를 비롯한 도쿄 여러 곳에서도 종교단체나 NPO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노숙인을 위한 식사제공(일본어로는 다키다시)를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뭐, 흔하다면 흔한 풍경이죠. 런던에 있는 동안 몇 번인가 저도 줄을 서서 밥을 타 먹은 적이 있는데요. 뭐, 줄을 서서 밥을 받는다는 건 사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죠.


▲ 산야의 공동취사 장면 ①
▲ 산야의 공동취사 장면 ②



















그런데, 도쿄의 경우 제가 활동하는 산야쟁의단과 시부야 지역의 ‘노지렌’(주거권과 복지를 위한 시부야 자유연합)이라는 단체에서는 다키다시가 아니라 ‘공동취사’를 하고 있어요. 자원활동가들이 밥을 지어, 줄을 선 노숙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밥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가 함께 밥을 짓고 같이 먹는다는 의미에서 공동취사라고 부릅니다.


처음으로 공동취사의 현장을 본 건 작년 산야쟁의단의 월동투쟁(연말연초 가장 춥고 힘든 시기에 노숙하는 동료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1주일간 같이 밥을 짓고 함께 노숙하는 행사)에서였습니다. 일본어가 서툰 탓에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활활 불이 타오르는 드럼통들이 위풍당당하게 늘어서 있는 센터 앞 골목, 즉, 공동취사의 현장에 들어서던 순간의 두근거리던 느낌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뭐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 너무나 이질적인 시공간이 거기 펼쳐져 있었거든요. 우리의 일상과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대도시의 시공간 따위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듯이, 익숙한 시공간을 뒤틀고 찢으며 튀어나와 있는 거대하고 와일드한, 움직이는 부엌. (마치, 곤충떼처럼) 집합적으로 움직이며 그 공간을 조립하고 작동시키고 해체하는 (족히 500명은 넘는) 사람들의 무리. 우앗, 뭐야 이거. 심장이 쿵쿵 뛰었더랬죠.


평소의 공동취사는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산야의 노동자복지회관 앞에선 진행됩니다. 월동투쟁의 공동취사처럼 스펙터클하지는 않아요. 오전 열한시 반 평균 20~30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다 같이 모여 메뉴를 정하고, 뚝딱뚝딱 조리대를 만들고. 재료를 다듬어 음식을 만들고 현장(우에노 공원과 산야보리 공원에서 격주로 진행)으로 옮깁니다.


그곳에서 다시 뚝딱뚝딱 조립식 식탁을 만들어 200~300명분의 밥을 늘어놓는 일련의 과정을 다 마친 후 “자, 그럼!”이라는 기분으로 다함께 음식을 먹는 거죠. 공동취사에 참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율이니까 그저 밥을 먹으러 현장에 온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그런 사람들도 식탁을 꾸리고 밥과 국을 퍼 담아 식탁에 나르는 과정, 뒷정리의 과정 등에 꽤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산야쟁의단의 공동취사는 이런 식이니까’라는 분위기가 있는 거죠.


▲ 산야의 공동취사 장면 ③

삶의 존엄을 확장하는 운동으로서의 공동취사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산야의 공동취사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버블로 요세바의 일이 급격히 줄어든 90년대 초반, 일용직 노동을 하던 동료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그들에게 있어 이는 곧 잠자리와 식사의 곤란을 의미했죠. 이에, 산야쟁의단을 비롯한 여러 운동 단체 및 종교단체들은 다키다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산야쟁의단은, 밥을 받는 동료들이 밥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형태로 식사가 제공되는 것의 의미를 고민했고. 그런 고민 위에서 보다 적극적인 운동의 형태로 제안된 것이 바로 공동취사였다고 하네요. 다키다시를 공동취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 간에 심각한 갈등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과정에 참여하고, 또 줄을 서지 않고 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몇 백명이 밥을 먹는 현장에서 구현하기엔 상당히 골치아픈 일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이탈리아의 스타쉐프가 경영하는 노숙자와 빈민을 위한 무료급식소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요. 비록 무료급식이지만 “훌륭한 셰프가 양질의 음식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존엄을 선사”한다는 이 프로젝트에 많은 기업과 셰프들이 감동을 받아서 물질과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나요. 산야에 오기 전에 이 기사를 보았다면 ‘헤에’ 하는 기분으로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주 공동취사에 참여하는 산야의 일원으로서는, ‘이게 무슨 헛소리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짜로 근사한 레스토랑에 앉히고 맛있는 걸 먹임으로서 타인에게 “존엄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곤란한 얘기죠. 어떤 음식이 어떤 형태로 제공되건, 무료급식소에는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식을 받는 사람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유명 셰프가 만든 화려한 음식을 공짜로 대접받다니 더욱 황송한 기분이 들겠군요. 심지어 “밥”뿐만 아니라 “존엄”까지 받고 있다면 대체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건지?


▲ 산야의 공동취사 장면 ④ <사진 출처=필자>

네, 조금 비아냥거려 봤습니다만 요지는 ‘존엄’이란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당연한 얘기지만요. 그런데 잘 생각하지 않으면 뭐가 당연한지 잘 알 수 없어져 버리잖아요. 뭐 공짜로 얻어먹는 주제에 불평하지 말라는 식의 감각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 줄을 서서 밥을 받는 형식이 문제라면 깨끗한 식탁에 앉히고 좋은 음식을 먹이면 되지 않을까? 라는 바보 같은 발상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 스스로 서로의 존엄을 확장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있는 힘껏 잘 생각하고, 그것이 가능해지도록 힘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는 거죠. 꽤 긴 시간에 걸쳐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을 산야의 공동취사야말로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자리의 소멸로부터 시작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진 압도적인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일과 집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런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우리(산야쟁의단과 홈리스행동)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활동/운동이 우리 스스로가 서로의 삶의 존엄을 지키고 확장하는 과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 그런 고민의 한 사례로서 산야의 공동취사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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