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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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Ⅰ>


죽어서도 ‘정말 가난한지’평가받아야 했던 증평 모녀


<정성철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송파 세 모녀에 이은 증평 모녀의 죽음
지난 4월 6일, 한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우편함에 수북이 쌓인 체납독촉고지서를 이상하게 여긴 경비노동자의 신고에 의해서였다. 우리에게 ‘증평 모녀’로 알려진 모녀의 죽음이다. 그들의 유서는 “남편이 숨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혼자 살기 너무 어렵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증평 모녀 사건이 알려진 직후,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빈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빈곤사회연대>


경찰은 모녀의 죽음의 원인을 ‘생활고 비관’으로 추정했고,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연상시키는 죽음이 또다시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안전망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했다. 증평군과 복지부는 모녀의 죽음에 사과하며 위기가구 발굴 및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얼마 뒤 모녀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경찰은 보도자료를 배포해 모녀의 통장잔액과 종합소득세액부터 아파트 임대보증금, 소유차량, 부채내역에 이르기까지 개인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후 정씨(母)가 과거 잘나가는 학원 강사였고, 외제차를 소유했던 적이 있으며 대학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기까지 했다는 등의 과거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녀죽음의 원인을 ‘신변 비관’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사와 여론이 등장했다. 증평 모녀는 죽어서도 자신의 생전 삶에 대해 평가받아야 했다.


이후 사망한 정씨의 명의를 도용해 저당 잡힌 차량을 팔고 해외로 도피한 여동생이 체포되면서, 정씨가 11월 말 딸을 죽이고 자살한 것이 밝혀졌다. 경찰은 증평모녀 죽음을 송파 세 모녀의 죽음과 선을 그으며 ‘신변비관 자살’로 결론지었다. 경찰 발표가 있은 후 증평군은 인터뷰를 통해 “군수가 복지사각지대 문제를 언급하며 공개 사과를 한 것은 성급했던 면이 없지 않나 싶다”, “개인 가정사에 따른 신변비관이 제2의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비화되면서 졸지에 군청 공무원들만 죄인이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기관이 가난한 죽음을 대하는 태도
경찰의 태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이 죽음 뒤에도 짓밟힐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증평 모녀의 죽음 앞에서 경찰이 취했어야 할 조치는 사망시점과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생활고 비관’과 ‘신변 비관’을 판단하기 위해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전시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후 죽음의 원인을 ‘신변 비관’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발 맞춰 공공기관인 증평군은 군민의 죽음 앞에 사과했던 것을 ‘성급했던 행동’으로 입장을 돌렸다.

▲ 경찰의 수사 결과를 전달한 어느 보도기사의 헤드라인<뉴시스, 4월 27일자>


경찰과 증평군이 의도했건 아니건, 그들의 발표는 ‘어중간하게 가난한 상태는 가난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것은 증평 모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신변 비관’과 ‘생활고 비관’이 칼로 베듯 명쾌하게 분리될 수 있을까. 증평모녀가 모든 재산을 처분했다면 당장에 쌓여있는 빚을 갚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빚을 청산한다고 해도, 소득이 중단된 상태에서 어린아이와 단 둘이 남는 상황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생활고가 찾아오면 신변을 비관하게 되고, 신변에 위험이 찾아오면 생활고가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으로부터 경제적인 궁핍이 찾아왔을 때 작동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회안전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가난의 고통을 개인이 감내하고 버텨야 할까. 송파 세 모녀, 그리고 증평 모녀에 이르기까지 그 결과는 죽음으로 귀결됐다. 가난의 도피처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가난이 죽음보다 두려운 사회,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증평모녀가 복지제도를 신청했다면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복지제도의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다. 수급자에게 인정되는 기본재산액은 서울, 광역시 등 대도시의 경우 주거용 재산을 포함해 5,400만원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증평군은 농어촌에 속하므로 2,900만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자기소유 자동차가 있는 경우 가액 100%가 매달 수입으로 잡힌다. 아마 증평 모녀는 수급을 신청했더라도 탈락했을 것이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재산기준이 조금 높게 책정되어 있지만 증평군의 경우에는 7,250만원에 불과하다. 이것이 한국사회 사회안전망의 현실이다. 집과 차,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버리고 더 처절하게 가난해져야만 복지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당사자는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 신청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모욕은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어쩌면 증평 모녀 역시 어렵게 용기를 낸 뒤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증평모녀의 죽음은 명백히 구조로부터 발생된 살인이다. 가난한 이들은 가난을 피해 죽음을 택하고 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선정기준을 현실화하고,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부실한 사회안전망, 가난의 기준선 아닌 개선되어야 할 과제


<정성철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너무 협소하고 부실하다.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이라 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대상자를 판단하는 선정기준을 비현실적으로 정하고 있다. 농어촌에 속하는 증평군의 경우, 수급자로 인정되는 기본재산액은 주거용 재산을 포함 2,900만원에 불과하다. 서울, 광역시 등 대도시의 경우에도 5,400만원으로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자기 소유의 자동차가 있는 경우 가액 100%가 매 달 수입으로 잡히게 된다. 쌀값이 50배 오르는 동안 집값은 3,000배가 올랐지만 수급자 판단기준인 기본재산액은 10년 째 변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더 처절하게 가난해져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것이 우리사회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인 것이다.


한편, ‘신변비관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경찰의 결론이 나온 직후, 증평군은 자신들이 잘못도 없는데 여론에 떠밀려 사과를 하게 됐다는 식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는 가난의 기준을 현재 복지제도의 기준선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공공기관의 무지함을 방증하는 것일 뿐이다. 복지제도의 기준선은 가난을 판별하는 기준선이 아닌,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가난의 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가난의 형태 역시 다양한 얼굴로 드러나고 있다. 그에 걸맞는 사회안전망이 정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한 번의 실수는 다시 오를 수 없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사태를 발생시킨다. 증평 모녀의 상황은 우연한 불운들이 겹쳐진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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