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위해 첫 국가배상 소송에 나섭니다


<서채완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故최인기씨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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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간 목수로 성실히 일해 온 한 남자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주치의로부터 ‘더 이상 일을 해서는 안 될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가진 재산은 오랜 세월 아내의 병간호를 하느라 모두 써버린 상황이다. 재산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는 남자는 국가로부터 복지 수급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자체적인 심사에 따라 남자에게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근로능력이 있으므로 일을 해야 복지급여를 주겠다”고 결정했다. 남자의 호소와 주치의의 소견도 소용이 없었다. 담당자에게서는 원칙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다니엘 블레이크와 주변 인물들이 불합리한 이유로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비참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 비참한 삶에 대해 방관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국가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인간답게 살 권리와 존엄성이 유린된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위 영화 속 이야기는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난 故최인기님의 이야기이자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   당국의 무리한 취업활동 강요로 인해 목숨을 빼앗긴 故최인기님

“수급 받으려면 일하십시오”


좌석버스 기사로 일하던 故최인기씨는 ‘흉부대동맥류’라는 질환으로 인해 2005년,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대체하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질환의 특성상 고인은 수술 후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몸 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숨이 찼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 약간의 환경 변화에도 감기 등을 자주 앓았으며, 작은 일에도 쉽게 피로를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故최인기씨는 수술 후에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고인은 두 차례의 큰 수술로 가세가 기울고, 몸 상태로 인하여 좌석버스운전사 업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기초생활법상의 급여지급을 신청하였고, 2008년부터 ‘일반수급자’자격으로 급여를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급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소득이자 최소한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말, 고인은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갑작스레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게 됩니다.


고인의 약한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일을 하지 않으면 급여가 박탈되는” 조건부 수급자로 판정한 것입니다. 고인이 몸이 아프다는 점을 수차례 호소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고인은 급여 없이 삶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014년 2월부터 아파트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일을 시작한 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밥을 먹기 싫어할 정도로 피곤함을 호소했고,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고인은 일을 시작한지 3개월만인 2014년 5월 경 일터에서 쓰러졌고, 수술을 받았던 부위에 감염이 재발하여 2014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급여가 박탈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아픔을 참고 고통 속에서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고인의 배우자인 곽씨는 고인이 중환자실에 쓰러져 있는 와중에도, 급여 담당자로부터 고인이 “왜 일을 하지 않고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담당자는 중환자실에 쓰려져 있는 고인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늦게 고인의 자격을 ‘일반수급자’로 전환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사경을 해매는 고인에게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고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인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습니다.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은 3년간 해당 죽음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고, 어째서 고인이 아픈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았는지에 대한 해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수급자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보려 합니다


고인과 같은 수급자들은 수급과 관련한 불합리한 조치에 대해 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기가 사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수급자들은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소요되는 일반적인 비용조차 부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입증이 어려워 패소가능성이 높은데 패소 시에는 변호사비용까지 부담해야한다는 장벽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법부에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는 수급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법적절차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위와 같은 장벽 때문에 고인의 억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묻는 소송은 쉽사리 제기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인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로, 부실한 근로능력평가와 취업의 강요는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현실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소속 변호사들은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행동 회의에서 더 늦기 전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물론 선례가 없는 힘든 소송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지만 이대로 놓아두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리인단은 고인의 배우자를 대리하여,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는 2017년 8월 28일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대리인단은 조건부 수급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첫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점을 밝히고자 합니다.


첫째,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이 고인의 실질적인 건강 상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형식적인 근로능력평가 및 판정을 함으로써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입니다. 고인이 제출한 진단서에 기재된 내용과 법령상 평가기준을 비교했을 때, 고인에 대한 ‘근로능력이 있음’ 판정은 법령에 어긋나고, 주의의무 또는 배려의무가 결여된 형식적이고 자의적인 판정입니다. 더군다나 수원시는 국민연금공단이 2013년부터 근로능력평가를 하기 전까지 수년간 고인의 건강상태를 평가하여 일반수급자로 판정해왔는데, 국민연금공단이 새로이 실시한 평가에 대하여 아무런 검토 없이 고인에게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하였다는 점은 근로능력판정이 얼마나 실질을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둘째, 수원시가 고인의 건강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노동시장으로의 취업을 강요하여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입니다. 수원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보장기관으로서 고인과 같은 조건부 수급자에게 조건을 부과함에 있어 역량 및 건강상태를 철저하게 고려하여 조건을 부과해야합니다. 그에 따라 수원시가 고인에 대해 진행한 역량평가에 따르면, 고인은 일반노동시장에 참여할만한 역량 및 건강상태를 갖추지 못했음이 명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시는 고인에게 일반노동시장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부과함으로써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태도로 가난으로 인해 기본적인 삶을 박탈당한 수급자들의 근로능력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탈수급이란 명목 아래 수급자들의 노동능력을 상품처럼 평가하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제34조에서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그러한 생활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의해 도출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장되어야할 불가침적인 기본적인 권리이자 인권입니다.


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태도로 가난으로 인해 기본적인 삶을 박탈당한 수급자들의 근로능력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탈수급’이란 명목 아래 수급자들의 노동능력을 상품처럼 평가하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급자들에게 아픔을 참고 일하도록 강제하는 현 제도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라는 헌법의 선언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아닌 노동력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취급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합니다. 실제로 고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급자들이 근로능력평가와 취업시장 참여 강요로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은 현 제도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디까지 평가당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고통받아야할까요? 예산 효율화라는 잣대로 좁아진 복지의 경계에서 수많은 수급자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근로능력 평가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질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대리인단은 이번 소송이 우리나라 복지체계로 인해 희생된 고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음과 동시에,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인간으로서 갖는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복지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한 걸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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