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편집위원의 눈]

 

인권의 원칙을 새기지 않은 일상, 회복의 대상 아니다 

 

<안형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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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일상회복 관련 공개토론회장 앞에서 기습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는 홈리스 당사자의 모습

<사진=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코로나 시기 내내 홈리스에 대한 사회서비스의 공백이 이어져 왔다.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전염병 상황에서 적정 주거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잠재적 사형선고"라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회서비스가 중단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의료, 고용, 주거, 급식 등 노숙인복지법이 명시하고 있는 복지서비스 가운데 제대로 작동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홈리스는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고, 소득을 구할 일자리가 없었고, 방역수칙 이행이 가능한 주거가 없었으며, 안전한 식사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복지의 공백 속에 홈리스들은 차별과 혐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언론은 왜 잠 잘 때 마스크를 쓰지 않는가를 따져 물으며 거리홈리스를 잠재적 감염원으로 취급하였고, 기초지자체와 철도역은 홈리스의 물품에 '폐기물' 딱지, '철도안전법 위반' 딱지를 붙여가며 주기적으로 쓸어가거나 압수하였고, 방역을 빌미로 한 폭력과 강제퇴거 조치들이 공공장소에서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노숙인 등 복지서비스의 질적/양적 개선은 조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정부와 지자체는 코로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집합적인 서비스로 점철된, 그렇기에 방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설복지만을 지속 고집해왔을 뿐이다.  누구나 이용을 꺼릴 수밖에 없는 집단밀집시설이 마치 적절하고 유일한 대책인 것처럼 홈리스에게 제시됐다. 결국 이런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은 거리홈리스 집단감염 사태로 이어졌다. 올해 초 '한파대책'의 일환으로 마련된 서울역 노숙인시설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으로 인해 무려 100명이 넘는 거리홈리스가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200명 이상의 밀접접촉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이 사태에 단 한 번도 책임을 진 일이 없다. 명백한 정책 실패는 엉뚱하게도 홈리스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방역조치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1월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숙인 지원기관 방문자에게 '7일 이내의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요구했다. 식사 한 끼를 위해서건 병원에 가기 위해서건 복지사를 만나기 위해서건 노숙인 지원기관을 방문하는 모든 거리홈리스는 일주일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홈리스의 사회서비스 접근성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만난 거리홈리스는 수십 장에 달하는 검사의뢰서와 음성확인서를 "올해의 역사"라며 들이밀었다. 차별과 폭력의 역사라고 한다면, 그의 말은 전연 옳은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홈리스에게 신속하고 엄격한 개별 방역조치를 요구했지만, 정작 홈리스 당사자들을 감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홈리스의 현실을 고려한 중앙정부 차원의 백신접종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묵살됐고, 결국 지자체의 역할로 떠넘겨졌다. 그 결과 전체 거리홈리스 백신접종률은 50%를 밑돌고 있으며, 심지어 몇몇 광역지자체에선 접종계획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조한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방역정책 역시 홈리스를 배제하기란 매한가지였다. 전 국민의 99%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할 동안, 거리홈리스의 지원금 신청률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올해 국민지원금 시행 과정에서 상위 12%를 포함하니 마니를 두고 차별이네 마네 공방이 오갔지만, 소득 최하위층인 거리홈리스 앞에 놓인 제도 이용의 장벽은 조금도 철거되지 않았다. 

 

정말 묻고 싶다. 지금까지의 방역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방역이었나. 음성확인서를 발급받기 위해 홈리스가 수십 번 코를 찌를 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준비한 것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감염 위협으로부터의 극빈층을 보호하고, 동시에 사회서비스를 보장할 전략이 단 한 번이라도 논의된 적은 있었는가. '위드코로나'를 말하기 전에, 코로나 시기 내내 국가로부터 '위드아웃'돼 있던 사람들의 박탈된 권리를 먼저 말해야 한다. 단언컨대 홈리스에게 코로나19 시기는 무정부상태에 다름 아니었다. 홈리스를 위한, 극빈층을 위한, 차별받는 약소자를 위한 대책과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인권의 원칙을 새기지 않은 ‘일상’은 회복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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