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133
2021.10.08 (14:32:42)

[미디어 요~지경]은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행태를 고발하는 꼭지

 

 

호의가 아니라 권리다

홈리스의 존엄과 공공의 책임을 인성문제로 퉁치려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부쳐

 

<안희제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93호_호의가 아니라 권리다.png

쏟아진 '이천 쌀 사태' 관련 보도로 8월 중 13일만 유독 두드러진 모습. 3, 4일의 얀센 백신 접종 소식 보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림출처=홈리스뉴스 편집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로 8월 한 달 동안 ‘노숙인’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들을 간단히 분석해 봤다. 국제뉴스와 과학기사를 제외하면 ‘노숙인’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는 총 127개가 나왔다. ‘노숙인’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들은 코로나19, 얀센 백신, 무료급식, 장애인, 급식소, 종사자, 취약계층 등이었다. 이는 주로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참사에서 백신 접종이나 마스크 착용 등 방역과 관련된 사안들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숙인들의 처지와 관련이 깊다. 

 

8월에 올라온 기사의 수를 보면, 딱 사흘이 튄다. 3일, 4일, 그리고 13일. 8월 3일과 4일에는 노숙인에게 얀센 백신을 접종한다고 간단히 소식을 전달하는 기사가 많았다. 그런데 8월 13일은 좀 다르다. 나는 이날의 보도를 ‘이천 쌀 사태’라고 부른다. 

 

8월 13일 하루에 13개의 기사가 올라왔는데, 8월에 하루 평균 약 4개의 기사가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큰 숫자다. 그리고 이날 나온 13개의 기사 중 서로 중복되는 종교계 기사 2개를 제외한 11개가 모두 같은 내용이다. 경기도 성남시의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에 몇 노숙인들이 와서 ‘이천 쌀로 지은 밥은 없냐’, ‘파리바게트 빵은 없냐’와 같은 질문을 하며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상황을 올렸고, 기자들은 별도의 취재도 없이 이걸 그대로 받아적었다. 주요 일간지들도 합세했다.

 

물론 기자들은 무엇이든 기사로 쓸 수 있지만, 노숙인 관련 보도가 단 한 건도 없었던 날도 이틀이나 되는데 왜 하필 저 사건만 저렇게 집중적으로 보도되었을까? 그것도 거의 얀센 백신 접종 소식을 알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말이다. 정확한 의도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노숙인들이 처한 상황은 외면하고, 이 모든 걸 ‘인성 문제’로 엮어 버렸다. 김하종 신부가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는 있겠으나, 기자들은 그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글을 써야 한다. 

 

노숙인들이 무료급식소에서 사실상 ‘민폐를 끼쳤다’라는 식의 보도행태는 애초에 노숙인들이 민간 무료급식소를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과 그것마저도 어려워진 코로나19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것을 막기 시작했고, 노숙인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무료급식소들은 운영을 중단하거나 지극히 간소화된 주먹밥이나 빵만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때 무료급식소들이 운영을 중단한 것은 단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교회, 비영리 단체 등에서 운영하던 급식은 멈추고 있지만, <노숙인복지법> 및 <식품위생법>의 규정에 따른 집단급식소와 서울시가 위탁운영하고 있는 노숙인 지원기관은 급식서비스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75호 참고).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코로나19의 참상만이 아니라, 노숙인의 식사를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닫는 것을 언론들은 그저 ‘코로나19가 드러낸 사회의 병폐’ 정도로 다뤘을 뿐이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꼼꼼히 취재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료급식은 공공의 책임과 노숙인의 불평등한 삶에 관한 문제다. 애초에 기사가 이따위로 쓰여 있으니 댓글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들이 난무한다. 

 

틀렸다.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한 뒤 그 자리를 불안정한 호의로 채우는 사회에서 우리는 애초에 그것이 호의가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밥은 생존이자 존엄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제대로 된 식사를 직접 보장해서 식사의 질과 안정성을 확보하라. 언론은 홈리스들의 ‘인성’을 운운하기 이전에, 무료급식에 대해 진정 다뤄야 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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